◈ 구암공원龜巖公園
龜巖 許浚 1539(중종 34)∼1615(광해군 7).
서울 강서구 가양동 1471,--------강서구 허준로5길 42
구암공원에서는 조선 선조와 광해군때의 명의였던
허준 선생이 앉아서 병자를 진료하는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서 생을 마감한 허준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에 동상을 세운 것이다.
허준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수 많은 백성들을 살리고
또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의학 서적을 저술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저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알맞은 처방과 약재를 누구나 알기 쉽게 기록한 '동의보감'이다.
노비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서자로 태어난 허준은
당시 적서 차별이 심했던 신분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궁궐에서 임금과 그 가족을 돌보는 어의가 되었으며,
정일품 '보국숭록대부'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陽平君양평군이라는 작호를 받음으로써 추앙받고 있다.
陽平君 龜巖 許浚 墓域 양평군 구암 허준 묘역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129
증보국숭록대부영의정 의성양평군허준중건비
증보국숭록대부양평군구암 양천허공준지묘준건비 배정경분인안동권씨부좌
◈ 광주바위
가양동의 명물이자 자랑거리인 광주바위는
지금은 육지로 변한 가양동 한강가 탑산 옆 강물 속에 있던 높이 12미터의 바위를 말한다.
옛날 큰 홍수가 났을 때 경기도 광주에서 떠내려 왔다고 해서 광주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비가 그친 후 광주의 명물인 바위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광주현감은 바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위가 양천 고을까지 떠내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광주현감은
바위를 제자리로 옮겨 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양천현감은 거절하지 못하고 바위에서 자라는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매년 세 자루씩 바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한 생각이 들어 광주현감에게 바위를 도로 가져가라고 하고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바위를 가져 갈 수 없었던 광주현감은 더 이상 세금을 내라는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본래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양천 고을 사람들의 착한 심성과 멋진 광주바위의 풍광을 잘 나타내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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