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川豊岩里 東學革命軍戰蹟地
홍천풍암리 동학혁명군전적지
강원도 기념물 제25호
강원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505-11,12
洪川豊岩里 東學革命軍戰蹟地
홍천풍암리 동학혁명군전적지
이곳은 조선(朝鮮) 말기(末期) 동학혁명군이 관군(官軍)과 싸웠던 전적지이다.
동학혁명은 고종(高宗) 31년(1894)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의 실패와
전라도(全羅道) 고부군수(古阜郡守) 조병갑(趙秉甲)의 탐학(貪虐)이 원인이 되어
부당한 처사를 호소한 농민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분노한 동학접주(東學接主)인 전봉준(全琫準)이 중심이 되어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旗幟)를 내걸고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때 홍천지방(洪川地方)에서도 농민항쟁(農民抗爭)이 크게 일어났는데
동학군의 일부가 홍천관아(洪川官衙)를 공격하고자 산에서 내려와 홍천읍 장야촌 지역까지 진군(進軍)했을 때,
당시 홍천지방의 관군총사령관(官軍總司令官) 맹영재(孟英在)와 접전(接戰)하여
속초리(束草里)에서 동학군 30여명이 전사(戰死)했다.
장야촌에서 패전한 동학농민군(東學農民軍)이 서석면(瑞石面) 풍암리(豊岩里)로 퇴각(退却)한 후 집결하여
김숙현(金肅鉉)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동학군이
최후의 항전지인 이곳 자작고개에서 관군과 치열한 접전 끝에 패퇴하게 되어 동학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1976년 자작고개에서 새마을 사업을 하던 지역주민들이 유해더미를 발견했는데,
당시의 사상자가 약 8백여 명이 될 것이라 추정(推定)하지만
대부분의 전사자와 부상자를 구덩이에 쓸어 묻었다고 하니 그 수는 부지기수이다.
현재 풍암리 주민 중 음력(陰曆) 10월 22일이 되면 30여 호가 기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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