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공 사암 정대년(忠貞公 思菴 鄭大年)
신도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48호
경기 여주시 점동면 원부리 205-3
議政府左贊成 忠貞公 思菴 鄭大年 (1503~1578)
의정부좌찬성 충정공 사암 정대년
본관은 동래(東萊). 字 경로(景老), 號 사암(思菴). 諡號 충정(忠貞)
조선 전기 의정부 찬성사를 지낸 정구(鄭矩)의 5세손,
아버지 예문관 대교를 지낸 정전(鄭荃).
어머니 이조판서에 추증된 신극정(愼克正)의 인 거창 신씨(居昌愼氏).
정대년(鄭大年)은 1532년(중종 27)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그 해 동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지평, 장령, 부제학 등을 거쳐 1544년(중종 39) 승정원 도승지에 제수되었는데 그해 중종이 승하하였다.
1552년(명종 7) 한성부 우윤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수령직을 청하고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포함된 양주 목사에 부임되었다.
양주 목사 재임 중 선정을 베풀어 명성을 얻어서 군적(軍籍)을 개정하였는데도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았으며,
이듬해인 1553년(명종 8) 가뭄이 몹시 심하였으나 길에 굶어죽어 나뒹구는 시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해 가을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떠나자 양주 주민들이 그를 기념하여 선정비를 세웠다.
정대년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비석을 넘어뜨렸으나 뒤에 주민들이 다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1568년(선조 1) 육경(六卿)[6조 판서]에 합당한 인물을 추천하라 하자
모두 정대년을 천거하여 특별히 한성 판윤에 임명되었다.
이어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벼슬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청백리로 이름이 났으며,
승지로 재임 중 윤원형(尹元衡)의 첩을 정경부인(貞敬夫人)에 봉하자 옳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
고의로 일을 지체시키는 등 윤원형의 권세에도 몸을 굽히지 않았다.
묘는 본래 광주(廣州)의 치소(治所) 남쪽[현 경기도 성남시 인근]에 있었으나
1986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원부리 산2번지의 동래 정씨 세장지로 이전하였다.
정대년이 세상을 떠나자 선조가 슬퍼하여 조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후한 부의(賻儀)를 내렸다고 한다.
諡號는 충정(忠貞)이다.
묘역 아래 세장지 입구에 사당인 혁림사(赫臨祠)가 있으며,
혁림사 내 비각에 1640년(인조 18)에 세운 정대년 신도비[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48호]가 있다.
근래 새로이 세운 신도비
영은문
혁림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정대년 신도비 비각와 동인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정대년 신도비
신도비문은 노수신(盧守愼)이 지은 것으로,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수록되었다.
손자 정호가 영의정 노수신이 찬한 비문을 새기려 하다가 임진왜란으로 못한 것을
후일 병조참판 오준의 글씨와 홍문관부제학 김광현이 쓴 비명을
증손자인 정양우,정양필 형제가 건립하였다는 기록을
비 후면에 자손 170여명의 명단과 충청도관찰사 정양필이 적고 예조정랑 유시영이 글를 썼다고 남기었다.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사암思菴 충정공忠貞公 정대년鄭大年묘소
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五衛都摠府都摠管 贈諡忠貞鄭公之墓 貞敬夫人全州李氏之墓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지경연사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충정정공지묘 정경부인전주이씨지묘
청미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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