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 정대년의 할아버지 부사직 정형운 묘소
정형운鄭亨耘
아버지는 부사직 정비이며,
어머니는 여주이씨로 지돈녕부사 이자의 딸이다. 형은 정윤운鄭允耘이고, 동생은 정이운이다.
배위는 거창신씨로 판관 신자수의 딸이나 후사가 없어서
형의 아들인 조카 예문관 대교 정전鄭荃을 계자로 양자하였으며, 사암 정대년의 할아버지이다.
贈嘉善大夫戶曹參判行 副司直鄭公亨耘之墓 夫人愼氏墓合祔
증가선대부호조참판행 부사직정공형운지묘 부인신씨묘합부
贈嘉善大夫戶曹參判 行副司直東萊鄭公亨耘之墓 配贈貞夫人居昌愼氏合祔
증가선대부호조참판 행부사직동래정공형운지묘 배증정부인거창신씨합부
사암 정대년의 아버지 예문관 대교 정전 묘소
정전(鄭荃)[1475~1513]
"증 이조참판공 묘갈명"
정씨(鄭氏)는 영남(嶺南)의 동래현(東萊縣)에서 나왔는데,
정목(鄭穆)이라는 이가 있어 고려(高麗)에 벼슬하여 태복야(太僕射)를 지냈고,
그로부터 16대손인 정선경(鄭善卿)에 이르러 졸(卒)한 뒤에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그가 정비(鄭秠)를 낳았고, 정비가 정윤운(鄭允耘)을 낳았는데,
이분이 영천 최씨(永川崔氏) 최계림(崔繼林)의 딸에게 장가들어
성화(成化) 을미년(乙未年, 1475년 성종 6년)에 공을 낳았다.
공의 휘(諱)는 전(荃)이고 字는 자원(子遠)이며,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전아(典雅)하였다.
어려서부터 지조(志操)가 있었고 아무리 다급하고 갑작스러운 경우를 당하더라도
느긋하고 신중하게 처리하였으므로 일이 지난 뒤에 후회할 만한 것이 없었다.
서사(書史)를 매우 좋아하였고 외물(外物)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바가 없었다.
또 남의 다급한 처지를 도와주기를 좋아하였고 아랫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였다.
홍치(弘治) 무오년(戊午年, 1498년 연산군 4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마침내 기사년(己巳年, 1509년 중종 4년)의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뽑혀 들어가 정자(正字)가 되었으며,
사관(史官)의 재주가 있다 하여 추천을 받아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로 옮기었고 이어 대교(待敎)로 승진하였다.
신미년(辛未年, 1511년 중종 6년)에 내간상(內艱喪)을 당하여
거상(居喪)을 예제(禮制)보다 지나치게 치르다가 몹시 슬퍼한 나머지 병이 들었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계유년(癸酉年, 1513년 중종 8년) 2월 24일에 복상중(服喪中)에 졸(卒)하였으니,
이때 나이가 겨우 39세였다. 광주(廣州) 옹정산(瓮亭山) 계좌 정향(癸坐丁向)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공의 배필(配匹)은 거창 신씨(居昌愼氏)로,
고려 때에 태보(太保)를 지낸 신익(愼翼)의 후손이자 참판(參判)을 지낸 신극정(愼克正)의 딸이다.
1남 1녀를 낳았는데, 딸은 현령(縣令) 이증화(李增華)에게 시집갔고,
아들은 정대년(鄭大年)으로 명성이 세상에 중(重)하여 벼슬이 참판(參判)에 올랐으므로
선대(先代)를 추은(推恩)하여 대교공(待敎公, 정전)은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고,
조고(祖考)는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으며, 증조고(曾祖考)는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참판(參判, 정대년)은
정휴복(鄭休復)ㆍ정선복(鄭善復)ㆍ정인복(鄭仁復)ㆍ정순복(鄭純復)ㆍ정돈복(鄭敦復)이라는 아들들이 있다.
(정대년의) 모부인(母夫人)은 일찍 홀몸이 되고 나자 자식들을 예(禮)로써 훈육(訓育)하였고 근신함으로써
가문을 유지하였으며, 비복(婢僕)들을 다독거려 거느릴 때에는 엄숙하면서도 은정(恩情)이 있었으므로,
집안의 친족들이 모부인의 행실을 모범으로 본받았다.
가정(嘉靖) 갑자년(甲子年, 1564년 명종 19년) 8월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마치니,
그 장지(葬地)는 대교공(待敎公)과 묘소는 같고 봉분(封墳)은 다르다.
참판(參判, 정대년)이 선대(先代)의 훌륭한 사적이 민멸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
묘도(墓道)의 비갈(碑碣)에 그 경개(梗槪)를 드러내고자
나에게 매우 간절하게 명(銘)을 지어달라고 요청하였으므로,
내가 의리상 감히 글재주가 없다고 사양할 수가 없었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성품이 신중하고 관대하였으니
그 덕의 기반이 매우 두터웠네.
하늘은 이미 넉넉하게 부여하고서도
어찌하여 그 수명을 인색하게 하였는가?
자기 몸에 소유하지 않았으니
그 책임은 후손에게 보답하는 일에 달려 있네.
훌륭한 아들이 집안을 창성(昌盛)시켰으니,
이 비석과 함께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리라.
撰 홍섬洪暹
贈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知經筵提學 行通仕郞藝文舘待敎東萊鄭公筌之墓 配贈貞敬夫人居昌愼氏合祔
증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지경연제학 행통사랑예문관대교동래정공전지묘 배증정경부인거창신씨합부
여주-정돈복,정항,정침 묘소-- 동래정씨 충정공 사암 정대년의 오남과 손자 (0) | 2017.11.05 |
---|---|
여주-정휴복,정호,정양필,정화재--사암 정대년의 장자,손,증손,고손자 묘 (0) | 2017.11.05 |
여주-충정공 사암 정대년(忠貞公 思菴 鄭大年)신도비-경기유형문화재 제148호, 동래정씨 혁림사 (0) | 2017.11.02 |
음성-충청감사 최상익(崔商翼),강원황해감사 가호 최중태(嘉湖 崔重泰),동래부사 구암 최명상(龜岩崔命相) (0) | 2017.11.01 |
음성- 첨지중추부사 최순(崔淳),관찰사공 최몽열의 장자/ 충의공 최몽량/ 문의공 최몽직 (0) | 2017.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