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전-경헌공송갑조묘소 景獻公 宋甲祚 睡翁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2. 28. 00:00

본문

728x90


쌍청당 송유 雙淸堂 宋愉  7代孫  경헌공 송갑조 묘소 景獻公 宋甲祚 

 

증정경부인선산곽씨부좌     경헌공수옹송선생지묘

 有明朝鮮朝散大夫行司饔院奉事宋公甲祚元裕之墓  端人善山郭氏祔左

 유명조선조산대부행사옹원봉사송공갑조원유지묘  단인선산곽씨부좌


경헌공 송갑조 景獻公 宋甲祚

1574(선조 7)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는 원유(元裕), 는 수옹(睡翁).

참봉 송세량(宋世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송귀수(宋龜壽)이고,

아버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윤경(李潤慶)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아버지이며, 최립(崔岦)의 문인이다.

종조부 송인수는 대사헌이었으며, 율곡이이를 공격했던 송응개와 송응형은 그의 친족으로 동인이었다.

그의 종조부 송인수와 조부 송구수는 서인이 되었으므로 그도 자연스럽게 서인이 되었고,

셋째 아들 우암 송시열 역시 자연스럽게 서인이 되어 일찍이 최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일찍이 어머니 광주이씨를 여의고, 어머니 이씨가 친정에서 데려온 노비 현비에 의해 양육되었다.

당시 현비는 양인인 강씨와 결혼하여 자녀가 있었는데,

유모 현비는 자신의 젖을 물려 어린 송갑조 형제를 길렀다.

이후 송갑조는 현비의 아들들을 자신의 친형제, 친동기처럼 대하였고 유모인 이씨를 깎듯이 대하였다 한다.

1617(광해군 9)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다.

이때 인목대비 폐모론으로 북인에 의해 인목대비가 폐모되어 서궁(西宮)에 감금당함에 분노하여

같이 합격한 이영구(李榮久) 등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리에 서궁을 방문,

서궁에 유폐된 인목대비를 배알하고 돌아와 폐비된 죄인을 알현했다는 이유로 그는 유적(儒籍)에서 삭제되어,

귀가 두문불출하다 낙향 이후에 학숙(學塾)을 열어 학규를 엄격히 하고 고훈격언(古訓格言)으로 학도를 가르쳤다. 

1623(광해군 15)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강릉참봉(康陵參奉)에 특별 제수되어 상경하였다.

1624(인조 2)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을 때는 도보로 공주의 행재소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고 조산대부로 승진했다. 

1627년 사옹원봉사에 제수되어 한성부로 오던 도중에 청나라의 침입으로 정묘호란이 터지자

남하하는 소현세자를 만나 전라북도 완산(完山)으로 수행, 호종하였다.

그 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시문과 독서로 소일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영조 때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경헌(景獻)의 諡號가 내려졌다.

묘역군 멀리부터   송창공 (松窓公)송수록(宋綏祿) 承政院左承旨(宋窓公派 派祖)(송유 7代孫)

                        쌍청당 송유 雙淸堂 宋愉

                        경헌공 송갑조 景獻公 宋甲祚(송유 7代孫)

                        은진 송남규 恩津 宋南圭

                                    정선군수 송선 旌善郡守 宋璿(사진찍은 곳 후면에 있음)


묘역 입구의 신도비



七代祖 송유宋愉

六代祖 송계사宋繼祀

五代祖 송순년宋順年

高祖父 송여익宋汝翼

曾祖父 송세량宋世良 참봉

   祖父 송귀수宋龜壽 봉사奉事

      父 송응기宋應期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母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윤경(李潤慶)의 딸.

          송갑조宋甲祚

          子 송시열宋時烈

            孫 송기태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