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홍릉(江華洪陵)
(고려 제23대 고종高宗 1213-1259) 의 능
사적 제224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 180
고려 제23대 고종高宗의 능(1213-1259) 사적 제224호
『고려사(高麗史)』에는 홍릉(洪陵),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는 홍릉(弘陵)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종이 몽고군의 계속된 침입을 막아 내면서
고종 46년(1259)태자 전을 몽고에 보낸 후 그해에 승하하였으며,
1259년(고종 46) 6월 임인일(壬寅日)에 재상 유경(柳璥)의 집에서 승하하자,
개경으로 가지 못하고 그 해 9월 기미일(己未日)에 이곳 홍릉에 안장하였다.
그 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趙復陽)이 찾아내어 다시 봉분(封墳)하였다.
능역(陵域)은 3단면으로 되어 있고 14단에 능이 있는데 높이 5척, 지름 14척으로 규모가 작다.
능의 네 모퉁이에 석수(石獸)가 각각 1구씩 배치되어 있고,
그 앞 2단면에는 각주형(角柱形)의 문인석(文人石) 2쌍이 마주하고 있으며,
조선 태조 초년에 건립한 작은비(小碑)가 있다.
강화도의 고려 왕릉은 수도를 강화에서 개경으로 옮긴 후 폐허로 남아있던 것을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풍양인 송곡 조복양(松谷 趙復陽,1609~1671)이 찿아내어 왕명을 받아
21대 희종(熙宗)의 석릉(碩陵),
22대 강종(康宗)의 비(妃) 원덕태후(元德太后)의 곤릉(坤陵),
23대 고종(高宗)의 홍릉(洪陵),
24대 원종(元宗)의 비 순경태후(順敬太后)의 가릉(嘉陵) 등 4기의 능을 확인하고 예를 갖춰 제사를 지냈다.
그후 1895년 을미개혁으로 제향이 폐지되어 방치되는 바람에 도굴되어 버려져 왔던 것을
1974년 재정비하였으며,
2001년경 발굴조사를 하여 관리되어 오고 있다. 그 규모와 석물들이 왕릉으로서의 위엄은 모자라고 있다.
강화-능내리 석실분(陵內里 石室墳), 인천광역시 시도기념물 제28호 (0) | 2018.05.28 |
---|---|
강화-가릉(嘉陵)고려24대 원종의 비-순경태후 김씨(順敬太后 金氏)의 능 - (0) | 2018.05.28 |
강화-곤릉(坤陵),고려 제22대 강종(康宗)의 비-원덕태후(元德太后)유씨의 능 (0) | 2018.05.27 |
강화-석릉(碩陵),고려21대 희종(熙宗)의 능/ 도장리 어두고인돌 (0) | 2018.05.27 |
양평-부제학 봉탄 윤담무 묘(鳳灘 尹覃茂), 사헌부집의 윤지성(尹知誠) (0) | 2018.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