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山延氏 江原道花樹會
곡산연씨 강원도화수회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968-5
崇祖閣
곡산연씨 연택로(延宅老)의 아들인 연최적(延最績)은
1682년(숙종 8) 증광문과 병과 급제로 성균관을 거쳐 사헌부 감찰에 올라
올바른 정치와 소신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으나 시사(時事)의 급변으로 모진 형신(刑訊)을 당하여 사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으로 다시 파직되었다.
1693년 숙종(肅宗)이 구언교(求言敎: 국정에 대하여 신하나 사람들의 직언을 구하는 교시)를 내리자
이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당시 화를 입은 자들의 용서를 구하는 상소문을 올려,
심한 국문을 당한 끝에 연최적(延最績)은 옥사하였다.
1738년(영조 14)에 복원되어 자손까지 녹용하라는 어명이 내려졌으며,
1779년(정조 3)에는 기사환국 당시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 두 신하의 죽음을 힘껏 구제하고
형장 아래서도 한마디 말도 바꾸지 않았던 충절(忠節)이 인정되어 증시(贈諡)되니 시호가 의민(毅愍)이다.
그를 추모하는 충효양전문(忠孝兩全門)이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慕忠洞)에 세워져 있으며,
효자로 정려(旌閭)되기도 하였다.
연최적(延最績)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권상하(權尙夏)를 따라 학문을 닦았다.
인현왕후 폐위의 부당함을 올린 이때의 사건으로
곡산연씨의 장손인 부사용(副司勇) 연태노는 모든 것을 떨치고 강원도 원주로 낙향을 하였고,
아우인 부호군공 연영로(副護軍公 延永老)는 내촌으로 낙향을 하여 강원도 곡산연씨의 뿌리가 된 것이라 하며
강원도 연씨의 상당수는 부호군공의 후손이고,
특히 서석면 수하리와 내촌면 물걸리에는 많은 후손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崇祖閣숭조각은 곡산연씨 21대손으로
강원도 화수회 입향조인 부호군공 연영로(副護軍公 延永老)의 후손들이
선조의 모시기 위한 묘각으로 副護軍公 延永老 외 선조들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忠孝傳家 千年福 충효전가 천년복 / 충신과 효자가 가문을 이어 천년의 복을 누리며
以淸淨心 花洗間 이청정심 화세간 / 깨끗한 마음으로 인간세상을 변화시키면
廣大願雲 㥛不盡 광대원운 극부진 / 넓고 큰마음의 기원속에 극진함이 다하지 않으니
崇祖尙門 萬歲榮 숭조상문 만세영 / 조상을 공경하고 문중을 빛내어 만년토록 번영할지라
통훈대부 군자감공 연윤식묘소
通訓大夫軍資監 谷山延公諱允植之墓 淑夫人善山金氏 淑夫人平海黃氏 祔左
통훈대부군자감 곡산연공휘윤식지묘 숙부인선산김씨 숙부인평해황씨 부좌
상주공파 25세손
애국지사 연의진묘소
愛國志士延義鎭之墓 配孺人平海黃氏 祔左
애국지사연의진지묘 배유인평해황씨부좌
애국지사 연의진 延義鎭(1873.10.24.~1919.4.3.)
곡산연씨의 29세손으로 義士의 譜名은 義熙,
1873 계유년(癸酉年)10月24日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판교동에서 출생
1919년 4월 3일 정오에 대대적으로 일어난 내촌면 물걸리의 만세운동에서
이곳의 애국지사 8명이 희생을 당하였다.
이에 광복이후 이곳에 팔열순국숭상추진회를 결성하고 팔열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팔열각을 건립하고
매년 3월 1일에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1990년 광복절을 기하여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하고
1991년 10월에 국가보훈처 광복회 후원으로 기적비를 건립하였다.
또한, 그때 희생된 여덟 분의 열사를 기리기 위하여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의 학교 이름이 팔렬중학교라 칭하고,
고등학교도 개교하면서 팔렬중고등학교라 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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