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기미만세공원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92 ,595
팔열각
순국팔열각
이순극,전영균, 전기홍, 이기선, 이여선, 연의진, 김자희, 양도준
기념비
기미만세상
1919년의 3·1운동은 천도교 및 개신교,
그리고 토요일이라서 학교를 마치고 귀향하는 학생과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어 강제로 유폐되어,
1919년 1월 21일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시고 조금지나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시고 그대로 승하한
고종 황제의 장례일이 3월 3일 월요일이기에 빈소를 조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일제가 독립만세시위를 막고자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강경 진압하면서 죽거나 다치는 사상자가 속출했으며,
강원도에서는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가 대표적인 만세시위운동지이다.
물걸리에서 장두 김덕원(金德元)과 부장두 전성렬(全性烈)이 지휘로 거사 일정과 장소를 미리 정하고
주변의 5개 면(내촌면, 화촌면, 서석면, 내면, 인제군 기린면)에 비밀리 연락하였다.
1919년 4월 3일 동창장터에서 1천여 명이 모여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내촌면을 향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던 중 미리 잠복해 있던 일본헌병과 보조원의 실탄 사격으로
이순극李順克,전영균全榮均, 전기홍全基弘, 이기선李基先,
이여선李麗先, 연의진延義鎭, 김자희金自喜, 양도준梁道俊 등
8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기미만세운동을 기리는 글
민족의 성역 동창마을에는 우리 한민족혼의 횃불을 밝혔던 역사의 자취가 서려있다.
제폭구민除暴救民의 동학혁명이 여기에서 불붙었고 위정척사의 의병항쟁이 이 고장에서 솟아 올랐다.
나라와 겨레사랑의 뜨거운 정신을 이어받아 다시금 동창마을에서 기미독립만세운동을 펼쳤으니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려는 바장하고 당당한 독립만세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켜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천도교 지도자인 장두 김덕원의사 부장두 전성렬의사가 주동이 되고
김우원의사, 이문순의사가 연락을 받아
기미년 4월 3일 내촌면 화촌면 서석면 내면 인제군 기린면 다섯 고을에서 수천여 군중이 운집,
이곳 동창마을에서 자주독립만세를 외치는 불길이 솟았다.
"우리는 자유와 독립을 찾기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한사람도 이탈없이 최후의 일각까지 싸웁시다" 하는
김덕원 장두의 절규에 흥분과 감격에 가득찬 군중은 피가 끓어 넘치도록 자주독립만세를 불렀다.
그 순간 간악한 왜경은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니,
이순극李順克, 전영균全榮均, 전기홍全基弘, 이기선李基先,
이여선李麗先, 연의진延義鎭, 김자희金自喜, 양도준梁道俊 팔열사가 흉탄에 쓰러졌고,
성춘선, 승만수의사등 수십여명이 부상당했으며,
이어 체포되어 매를 맞고 고문당한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수 없었다.
오호라! 어이 잊으리 그날의 울분을!
선열의 거룩한 뜻이 이어받은 홍청군민은 역사의 교훈이 깃든 여기에 기념상을 세워
숭고한 기미독립만세운동의 애국정신을 길이 후세 계승코저 한다. 1991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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