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傳燈寺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강화 전등사 대웅전 (江華 傳燈寺 大雄殿)(보물 제178호)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6년 수리할 때 발견된 《양간록(樑間錄)》에는
1605년(선조 38) 불에 타버리고 1614년에 다시 불이 나 전소된 것을,
1615년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1621년에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에는 특이한 조각상과 함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대웅전 네 귀퉁이의 처마를 손으로 받치고 있는 나체의 조각상.
조각상에는 대웅전을 지은 목수가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여인을 벌하고 그 죄를 씻어주고자
조각상을 만들어 추녀 네 귀퉁이를 떠받들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특이한 것은 추녀 4곳 중 2곳의 조각상은 두 손이 아닌 한 손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
꾀를 부리는 듯 한 모습으로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멋스러운 익살은 대웅전 내부 수미단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불법을 수호하는 도깨비 조각의 재치 있는 표정은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당시의 능숙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 (傳燈寺 大雄寶殿 後佛幀)(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
1916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삼존불좌상(인천유형문화재 42)의 후불탱이다.
한 폭에 석가모니와 약사불, 아미타여래를 그린 일폭삼세불화(一幅三世佛畵)이며
크기는 가로 310cm, 세로 260cm이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수미단 (傳燈寺 大雄寶殿 須彌壇)(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수미단은 불상을 안치한 일종의 대좌와 같은 형식으로
대웅전 내의 천개와 더불어 장엄한 불교세계를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다.
전등사 수미단은 가로 480㎝, 세로 118㎝, 폭 200㎝로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맨 하단 받침부 몰딩 사이에 불법(佛法) 수호신격인 도깨비와 같은 문양이 익살스럽게 조각되어 있고,
중간부 장판에 꽃,나무,새,당초문,보상화문,상상의 동물 등이 화려하게 투각되어 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江華 傳燈寺 명부전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보물 제1786호)
강화 전등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일괄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숭정(崇禎) 9년(1636)이라는 뚜렷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조각승 수연(守衍)에 의해 조성된 지 13년이 지난 뒤에
역시 수연이 수화승이 되어 제작한 상들이다.
지장보살상과 그 좌우에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十王)와 귀왕, 판관, 사자상, 동자상, 인왕상 등
명부전의 권속이 많다보니 조각승도 12명이나 참여하여 수연의 지휘 아래 제작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상들의 조성을 위한 시주에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전등사 일대의 대대적인 불사(佛事)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장보살상은 방형의 얼굴에 엄중하면서도 자비로운 상호(相好)를 보이며
양 어깨에 걸쳐진 대의 옷자락은 유연한 주름을 이루며 하체로 연결된다.
양손으로는 지물을 들지 않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을 결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감이 우수하다.
지장보살상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도명존자상은 얼굴표현에서 사실성이 돋보이며,
장삼위에 가사를 입은 착의형식이 단정하다.
수연 조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와 시왕상과 기타 권속의 여러 상이 있다.
조각기법상의 우수성, 조각가와 조성연대에 대한 분명한 기록,
원래부터 전등사 명부전 봉안을 위해 조성된 상이라는 여러 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큰 상들이다.
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보물 제179호)
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대웅전약사전개와 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 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주위에는 화려한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놓았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의 건축수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강화 전등사 약사전 석불좌상 (傳燈寺 藥師殿 石佛坐像)(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
이 석불좌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신체비례로 보아 갸름한 체구에 단아한 얼굴형을 하고 있어 고려 불상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방을 향한 얼굴에 눈을 약간 아래로 내려 뜬 단아한 얼굴과 목은 정확한 삼도가 있어 길어 보이고,
벌어진 어깨선은 자연스러워 보이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선정인을 하였다.
그리고 약합을 들고 있어 전형적인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통견의 두꺼운 가사는 길상좌를 취한 무릎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내려졌으며
옷 주름은 훤칠한 자세에 비해 약간은 형식적으로 보인다.
전등사 약사전 후불탱 (傳燈寺 藥師殿 現王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
조선 고종 21년(1884)에 승려 혜과가 제작한 후불탱으로 정사각에 가까운 화폭 중앙에
약사여래좌상과 좌우협시인 일광·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상하 좌우에는 사천왕을,
약사불 뒤에는 가섭과 아난을 그린 병렬식 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색채는 18세기 후반의 색 배합을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도상을 계승하고 안정된 화면 구성,
꼼꼼한 필력을 갖추고 있어 19세기 불화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전등사 업경대 (傳燈寺 業鏡臺)(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7호)-문화재청
업경대는 망자의 죄업을 드러내 보인다고 하는 거울로 업경륜이라고도 한다.
전등사 업경대는 황색사자와 청색사자 1쌍으로 목각 사자의 몸체와 등 위에 커다란 화염문 거울이 꽂혀있다.
규모는 높이 107cm, 길이 65cm이다.
좌대 바닥에 ‘천계칠년정묘구월 십삼일 각록목화원밀영 천기 봉생
(天啓七年丁卯九月 十三日 刻祿木畵員密英 天琦 奉生)’이라는 묵서 명문이 남아 있어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등사 업경대는 조선 후기 불교 목공예품의 편년 설정·상호비교 연구의 획기적 자료로 평가된다.
강화 전등사 대조루 (傳燈寺 對潮樓)(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전등사는 아도화상이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세운 절로 정족산성 안에 자리잡고 있다.
절 입구에 세운 대조루는 기둥을 세워 지면과 사이를 두고 지은 누각이다.
지은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25년(1749)과 헌종 7년(1841)에 고쳐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뒤 크고 작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양식으로 비교적 간략한 수법이다.
안쪽에는 ‘선원각’, ‘장사각’ 현판과 함께
영조의 친필이라는 ‘취향당’ 현판을 보관하고 있는데 현재 이들을 걸어 두었던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삼성각
향로전
강화 전등사 청동수조 (傳燈寺 靑銅水槽)(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6호)
전등사 청동수조는 지름 112㎝, 높이 72㎝로 고려 말∼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으로 제작된 이 수조는 바리(鉢)형태를 띠고 있고,
구연부에는 덧띠를 두르고 있으며 약간의 균열과 파손 흔적이 보이지만 모두 수리하여 양호한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수조(水槽)는 삼국시대부터 큰 돌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기 시작하였으며
우물가에 두고 그릇 등을 씻을 때 사용하였다.
수조(水槽)는 궁궐에서는 드무라 부르는데 솥같이 생긴 그 안에 물을 채워 화재가 날 경우 바로 사용할 수 있고,
공중에 떠다니는 화마(火魔)나 불귀신이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벌써 동료가 와 있게 하여 다른 곳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 설치한다는 설화가 있다.
현재까지 명문(銘文)이나 청동수조 제작과 관련한 기록이 보이지 않아
정확한 제작 연대를 밝힐 수 없지만 고려 말 내지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등사 강설당講說堂
스님들이 경전에 대한 공부를 하던 곳으로 병영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1866년 병인양요때 강계포수 800여명이 취사를 하였다고 한다. 현재 템플스테이 사무국으로 사용
강화 전등사 철종 (傳燈寺 鐵鍾)(보물 제393호)
일제시대 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 과정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철종으로서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로 옮겨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형태와 조각수법에서 중국종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춘
높이 1.64m, 입지름 1m의 종으로 한국의 종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종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려서 종의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은 없이 천판(天板) 중앙에 구멍을 뚫었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를 돌려가며 배치하고,
종의 몸체 중간을 가로지른 3줄의 띠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 곽을 돌렸다.
이 정사각형 곽에는 명문을 새겼는데, 명문을 통해 이 종이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 곧 고려 숙종 2년(1097)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철로 만든 종이지만 종소리가 청아하며
중국 북송 시대에 만들어진 명문을 지니고 있어 중국종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용인-와우정사, 연화산 와우정사蓮華山 臥牛精舍 (0) | 2018.08.05 |
---|---|
군산-근대역사박물관,구군산세관본관,호남관세박물관,은적사삼층석탑,의병장임병찬,선유도초분공원,대장봉, (0) | 2018.08.05 |
강화-전등사,삼랑성종해루,서운대종사탑비, (0) | 2018.08.04 |
안산-참의 윤징일(尹徵逸),윤징창,윤두운,윤우,윤좌,윤명창,파평윤씨징일공파 (0) | 2018.07.26 |
예산-효자 이우영 지려(李禹榮 之閭), 이우영 효자정려 (0) | 201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