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암朝宗巖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산176-1
경기도 기념물 제28호
조종암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47년이 지난 1684년 어느날,
허격이라는 선비가 가평군수 이제두, 유생 백해명 등과 춘추대의를 논하며 향명배청의 뜻을 다진다.
그리고 이들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도와준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게서 받은 수모를 잊지 말자는 뜻을 바위에 새기기로 한다.
견심정(見心亭)==1874년(고종 11)문간공 성재 유중교(文簡公 省齋 柳重敎)가 문인들과 같이 찾아와서
이항로(李恒老)가 정자를 지으려던 바위에 새긴 글자로
『조종암지』 편찬을 그 문인 김영록(金永祿)에게 명해 다음해에 완성하였다.
기실비(紀實碑)==1804년(순조 4)에 익헌공 일청 김달순(翼憲公 一靑 金達淳)의 글씨에
익헌공 당헌 서매수(翼憲公 戇軒 徐邁修)의 전서로 조종암 앞에 세운 조종암 기념비
일모도원지통재심(日暮途遠至痛在心)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마음에 있다' 라는 뜻.
청나라에 복수를 다짐하는 효종의 시를 송시열(宋時烈)의 필적으로 새겼다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再造藩邦)==선조의 어필
'황하가 일만 번 굽이쳐도 동쪽으로 흐르니
명나라가 도와서 우리나라를 되찾았네' 라는 뜻의 선조가 내린 글이다.
명나라에 대한 고마움과 청에 대한 복수심이 엿보인다.
특히 '재조번방'을 크게 각자하여 명나라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이 표현되어 있다.
조종암(朝宗嵒)=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朗善君 俁)의 전서체 친필
조종은 가평의 옛 이름이기도 하지만 '제후가 황제를 배알하다'는 뜻도 있다
1804년(순조 4)에 가평 군수 이제두(李齊杜)와
陽川人 창해(滄海) 대명처사(大明處士) 허격(許格)과
가평유생 백해명(白海明) 등이 바위에 새기고 ‘조종암’이라 하였다.
사무사(思無邪)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원병한 명나라에 보은하는 뜻에서
1684년(숙종 10)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사무사(思無邪)’
논어 위정편(爲政編)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로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 는 뜻이라 한다.
김상헌이 심양에서 얻어온 의종의 어필이다.
화서학파가 말한 사(邪)는 명나라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지칭했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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