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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문강공 용문 조욱 文康公 龍門 趙昱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3. 1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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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공 용문 조욱 文康公 龍門 趙昱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 산7

양평군 향토유적 제26

 

 

 

하나 둘 셋 넷 계단을 일부러 백팔계단으로 맞추었는가 보다.

 

 

 

문강공 용문 조욱 文康公 龍門 趙昱

1498(연산군 4)1557(명종 12).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는 경양(景陽), 는 용문(龍門보진재(葆眞齋).

아버지는 판관 조수함(趙守諴)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춘양군(春陽君) 이래(李徠)의 딸이다.

 

 

1516(중종 1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을 사사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썼다.

기묘사화 때 두 스승에 계루되었으나 연소하다고 하여 화를 면하였다.

그 뒤 형인 조성(趙晟)과 함께 삭령에 집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며 지냈는데,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에 비겨 칭송하였다.

뒤에 선원전(璿源殿순릉(順陵영릉(寧陵) 등의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어머니의 3년상을 마치고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학문이 알려져 용문선생이라 일컬어졌다.

명종 때 성수침(成守琛조식(曺植) 등과 함께 천거되어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 제수되고, 장수현감에 이르렀다.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으며,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용문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용문집(龍門集)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有 朝鮮國龍門趙先生墓碣銘幷序

                    유 조선국용문조선생묘갈명병서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 領經筵事監春秋館事趙 撰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겸 영경연사감춘추관사조 찬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 領經筵事監春秋館事李健命 書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겸 영경연사감춘추관사이건명 서

通政大夫行黃州牧使 黃州鎭兵馬僉節制使李徵顯 像

통정대부행황주목사 황주진병마첨절제사이징현 상

 

 

 

 

 

 

 

 

 

 

 

 

 

 

 

 

 

 

//문강공 용문 조욱가계도//

    9세조 조인규(趙仁規) 평양백(平壤伯) 정숙공(貞肅公)

    5세조 조진(趙瑨) 또는 조전(趙戩)

    4세조 조승(趙乘)

   증조부 조득인(趙得仁)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

   증조모 모읍안씨(某邑安氏)

할아버지 조양문(趙楊門)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할머니 모읍최씨(某邑崔氏)

   아버지 조수함(趙守諴) 정주판관定州判官

   어머니 전주이씨, 춘양군(春陽君) 이래(李徠)의 딸

             형님 조성(趙晟), 양심당(養心堂).

           문강공 용문 조욱 文康公 龍門 趙昱

                       자 조원빈(趙元賓)

                       자 조공빈(趙孔賓) 목천 현감(木川縣監), 장례원 사평

                                   손자 조응생(趙應生), 조계생(趙繼生), 조영생(榮生)

                       자 조인빈(趙仁賓)

                                   손자 조진생(趙震生), 조형생趙亨生), 조익생(趙益生), 조이생(趙頤生)

                        자 조명빈(趙鳴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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