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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관수정觀水亭, 사우당四友堂, 김대진金大振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6. 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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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觀水亭)

문화재자료 제36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65,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706-20,

관수정(觀水亭)

문화재자료 제36 

관수정은 1624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사우당(四友堂) 김대진(金大振)선생이

경상감사 이민구와 지역 사림의 협조로 건립하였으나

1721년 소실된 것을 1866년 그의 후손 김규한이 중건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정면 5, 측면 1칸의 일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1칸의 온돌방을, 왼쪽에는 2칸의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관수정은 주위 자연환경과 잘 조화되고 건물 각부의 비례구성이 단정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여 조선후기 정자건축의 흐름을 잘 표현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김대진(金大振) 1571(선조4)

본관은 서흥(瑞興). 는 이원(而遠). 는 사우당(四友堂)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5대손.

공은 태어나면서 총명하고 비범하였으며 성장하여서는  선조 여헌(旅軒) 선생을 좇아 배웠는데,

가족을 이끌고 여헌 선생의 이웃에 거처하면서 조석으로 훈도(薰陶)를 받았다.

또 치재(癡齋) 허명신(許命申)과 함께 소학(小學)근사록(近思錄)등의 책을 토론하였는데,

견해가 탁월하여 사우들에게 추중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소모관(召募官)으로  망우당(忘憂堂)곽재우의 의진(義陣)에 달려가 힘을 다하여 계책을 도왔다.

 

기유년(1609, 광해군1)에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어 추천으로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고,

봉사(奉事)와 직장(直長)으로 벼슬을 옮겼다가 외직으로 나가 김천 찰방(金泉察訪)이 되었는데,

벼슬은 자기의 본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임기를 채우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도동서원(道東書院) 옆에 정자를 지어 관수정(觀水亭)이라 이름하였으니,

추부자(鄒夫子)물결을 관찰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숭정(崇禎) 갑신년(1644, 인조22)에 돌아가시니 도동서원 뒤 경좌(庚坐) 언덕에 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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