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중국-대련뤼순감옥, 뤼순형무소日俄监狱旧址, 여순감옥旅順监狱, 뤼순일본관동법원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8. 1. 23:34

본문

728x90





뤼순감옥, 뤼순형무소(日俄监狱旧址) 여순감옥(旅順监狱)

다롄 시내에서 45km 떨어진 뤼순(旅顺) 지역은 랴오둥 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주요군항으로 해군 기지와 잠수함이 떠 있어 불과 몇년 전까지 외국인은 출입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롄을 찾은 한국인들이 잊지 않고 방문한다.

일제 강점기 때 항일 지사들이 갇혀 있던 뤼순 감옥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감옥은 총 275개의 감방에 2,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으며,

일본군은 한국과 중국의 항일 지사를 사상범이라는 명목으로 닥치는 대로 잡아 이곳에 수감하였다.

1906~1936년 사이에는 수감자가 연간 2만여 명에 달했다고 하며, 그중 700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특히 19091026일 하얼빈 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명문가의 자손이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선생,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신채호 선생이 수감돼 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일본의 만행이 가장 끔찍하게 드러나는 곳은 사형장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형을 집행하는게 아니라, 세 사람을 나란히 세워 목에 줄을 동여맸다.

사형을 집행한 후에는 목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목구멍에 꽂아 보았다.

시신은 사형장 아래 나무통으로 떨어뜨려 반으로 접어 넣었으니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당시 사용했던 도구와 사진으로 과정을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을 구금했던 감방//

안중근(1879-1910)은 조선 황해도 해주부 사람이다.

1907년 조선의병운동에 가담하여 참모중장을 담당하였으며 1909"대한독립동맹" 조직에 참여하였다.

동년 1026일 그는 중국의 하얼빈역에서

일본제국주의 중심인물로 조선 초대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체포된 후 113일 여순감옥으로 압송되었으며 일본의 "국사범"으로 분류되어

간수부장 당직실 옆에 있는 이 감방에 단독으로 구금되었다.

1910326일 오전 10시에 안중근은 감옥 교수형장에서 순국하였으며 그때 나이 32세였다.



<안중근의사의 친필>

감방의 내부 벽에는 안중근의사의 친필 두 점이 걸려 있다.

"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면 애가 끓는다.

















단재신채호 丹齋 申采浩 선생께서 구금되어 있던 35호 감방

35호실 옆 우당이회영 友堂李會榮 선생께서 구금되어 있던 36호 감방





사형집행건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