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홍천성당(등록문화재 제162호)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마지기로 54/ 홍천읍 희망리 105
[근대문화유산] 춘천교구 홍천성당(등록문화재 제162호)
홍천성당은 1만5279㎡(4,630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가 인상적이다.
6ㆍ25 전쟁 전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한국 농촌 사목에 평생을 바치고,
납북으로 이어진 6.25의 역경까지 이겨낸 조선희 필립보 신부가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본부와 고국 신자들이 보내준 돈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조금씩 매입한 것이다.
한때 서석면과 내면, 그리고 현리까지 관할했던 홍천본당의 뿌리는
성당에서 12㎞ 떨어진 송정공소(홍천군 화촌면 송정리)다.
송정리는 박해시대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들어와 터를 일구고 산 옹기촌으로 유명하였으며
옹기촌 신앙 공동체는 본당으로 승격(1923년)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읍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교세확장에 어려움을 예상하고
193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초기 목조 성당은 6ㆍ25 전쟁 중 폐허가 되었으며,
최동오 아나타시오 (마산교구 은퇴) 신부가 부임해 미군부대에서 미송과 시멘트를 얻어다 재건한 뒤
잠시 미사를 봉헌하다 윗터에 현 석조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최동오 아나타시오 신부는 전쟁 직후 궁핍한 시절에 성당을 짓느라 많은 고생을 하였다.
홍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에 가서 건축기금을 얻어다 부지를 마련하고,
공병대를 찾아다니면서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중장비를 지원받으며,
돌은 미군부대 트럭을 동원해 성당에서 15㎞ 떨어진 삼마치 고개에서 실어왔다.
또 서울 춘천 원주 등지에서 석공을 불러다 돌을 쪼고 다듬어 쌓아 올렸다.
마루와 창문에 들어갈 목재는 미군 공병대에서 얻어왔다.
그러나 최 신부는 지붕공사가 남은 성당을 뒤로 하고 용소막본당으로 떠났다.
이어 1954년 8월 조 필립보 신부가 부임했다.
1947~50년, 54~61년, 62~68년 3차례 홍천본당에서 사목한 조 신부는
성당 건축과 강원도 내륙지방 복음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홍천을 중심으로 인근 면ㆍ리 단위 마을까지 걸어 들어가 공소 20여 개를 직접 지은 불굴의 선교사다.
조 신부는 6ㆍ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체포돼 그 혹독한 '죽음의 행진'에 끌려갔다.
휴전과 동시에 본국인 오스트레일리아로 송환된 조 필립보 신부는
프랑스에 들러 큰 종을 사서 한국행 화물선에 부치고 홍천으로 돌아왔다.
현재 그 종이 종탑에 걸려 있다. 그 종소리는 2000년까지 하루 3번 삼종기도 시간에 맞춰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근래에는 종과 종탑 사이 유격이 좁아 종을 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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