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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척야산 남강 김창묵(南江 金昌默), 장두 김덕원(掌頭 金德元),척야산 문화수목원(拓野山)

홍천

by 碧巖 2019. 11. 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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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165-5

남강 김창묵 선생의 개인 사재로 건립된 홍천 척야산 문화수목

 

 

 

 

장구 김덕원 의사(掌頭 金德元 義士) 초상화

보명 김원경, 자 덕원(譜名 金元經,  字 德元)

 

 

 

 

김창묵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

남강 김창묵(南江 金昌默)  선생

독립운동으로 천석꾼 집안의 몰락, 자수성가로 잊혀가던 민족혼 깨우다

홍천 내촌면 동창마을  독립투사 김덕원 의사 후손

일제에 의해 집안 풍비박산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    김호석 20190223일 토요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김창묵(97세, 1922年生)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의 좌우명과도 같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동창마을도 그에게는 민족정신을 이어갈 터전이다.

김창묵 회장은 대한민국이 현재 번영을 누리는데는 조상들의 희생이 있었다

                평소 신념을 강조했다.

 

 

 

김창묵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의식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922 壬戌生 ~           )  

 

 

김창묵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

 

홍천군 내촌면 동창마을에 들어서면 봄이면 꽃이피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단풍으로 물들어 산책하기 좋은, 척야산 문화수목원이 자리하고 있다.

나들이로 구경왔던 사람들은 수려한 자연경관에 반하며 즐거워하기 마련이지만

곳곳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의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조형물 등을 바라보면

하나하나 손때 묻어있는 애국정신을 깨닫게 되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제 조성되기 시작한지

30여년을 바라보는 척야산 문화수목원 속에는 김창묵 회장의 염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100년전 이곳 홍천군 내촌면에서는 강원도내에서는 비극적이고 격렬한 3·1만세운동이 펼쳐졌다.

동창만세운동은 동창마을에서 주민 1,000여명이 만세를 부르다

일제 경찰의 총탄에 팔렬사8명이 순국한 강원 최대의 만세운동이다.

시위를 이끈 독립투사 중 한명이 김덕원 의사(義士)며 김창묵 회장의 할아버지의 6촌형제다.

 

김창묵 회장이 태어났을때는 이미 김덕원 의사가 사망한 후였다.

마을에서 천석꾼으로 불렸던 그의 집안 재산도 김덕원을 체포하려는 일제에 의해 모두 사라졌고

김창묵 회장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과 가난의 연속이었다.

고단한 삶을 개척하기 위해 열여섯 나이에 농업개척단원으로 나홀로 만주에 갔다가

몇년 후 대한민국 광복을 맞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 서울에 터를 잡고 가난과 싸우며 억척같이 삶을 살아왔다.

어느덧 동찬기업을 세우며 자수성가의 표본처럼 성공의 길을 걷게 됐다.

 

성공한 그의 앞에 1991년 고향인 홍천군에서 기미만세공원 조성을 도와달라는 부탁이 전해져왔다.

흔쾌히 수락하고 찾아온 고향은 자신이 할머니로부터 듣고 자라온 기억과 그 당시 모습과는 사뭇달랐다.

어느덧 자신의 종()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은 잊혀져가고 있었고

동창마을 곳곳에 남겨진 선열들의 애국정신도 흐려지는 듯 했다.

김 회장은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독립투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묵묵히 시작하게 됐다.

김 회장은 일제 탄압이 두려워 할머니는 가족의 독립운동 사실도 숨겼고

나조차도 힘든 생활에 고난의 세월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후손들이, 이땅의 민족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민족정신을 이어나가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내가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만만하게 시작된 기념사업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김덕원 의사가 만세운동 이후 동창마을 일대에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3년이나 숨어 살았기에

묘소는 커녕 사망 일시등 자료에 관한 기록도 찾기 어려웠다.

 

김 회장이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주변 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동창마을 애국의 역사를 고증하는데만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 회장은 기념사업을 위해서는 서울의 집에서 출퇴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곳 척야산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 며칠 밤을 새우며 일을 해야 했다

사재로 척야산 일대 땅을 구입하고 직접 공원을 설계했다.

선양사업을 너무 강조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수목원처럼 친숙하게 꾸며

많은 사람들이 동창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순히 수목원을 조성하고 조상의 독립운동 역사를 고증하는데만 몰두하지 않았다.

동창마을 곳곳에 새겨진 독립투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추진해왔다.

이달에는 홍천 곳곳에 밸런타인보다 올바른 역사 알자배너를 설치하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일제강점기가 36년이 아닌 72년이었다면

그 이후 2세대, 3세대는 우리말과 역사를 잊어버리고 민족성을 잃어버렸을 것이라며

그 만큼 역사는, 민족정신은 꼭 후세에 남겨야할 우리시대의 사명과도 같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홍천군 서석면 수하2리 용호터마을 앞 강가 바위에 새겨진 대한민국 만세라는 글자를 발견,

이 바위에 담긴 역사적 진실과 애국정신을 고증해 기념사업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여기 강가가 이 바위보다 한참 높게 수위가 유지되고 있었다

항일 운동을 하던 이 지역 의사들이

광복을 기원하며 일제의 눈을 피해 물속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사학자들과 국민들이

이같은 독립운동의 흔적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역사화해 후손들에게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투사들에게 관심을 갖고 숨겨져 있던,

잊혀가는 독립투사들의 역사가 명명백백 밝혀지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일제의 탄압에 독립운동가 후손은 선진지식과 지혜를 배우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가난에 빠지고 힘든 세월을 보내왔다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그들을 숨겨주고 지켜주고 보살펴준 모든 사람들도 넓게 보면 독립투사와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가 행복해지고 또 우리 후손들이 감사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호석 kimhs8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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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계림군파 장두 김덕원(金德元)선생 가계도와 남강 김창묵선생 가계도///

19대조 계림군 제숙공 취죽당 김균(鷄林君 齊肅公 翠竹堂 金稛)조선조개국공신 의정부좌찬성

17대조 공호공 김종순(恭胡公 金從舜)육조청백리(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9대조 김세신(金世臣)

  8대조 김필연(金弼衍)

  7대조 김흥대(金興大)

  6대조 김사천(金思天)

  5대조 김영억(金永億)

 고조부  통정대부 상헌부감찰 김치집(金致集, 1751壬申生) 字 군보(君甫

                                              김치집 동창보보주김군보(金致集 東倉洑洑主金君甫) 

 증조부 통정대부 병조참의 김현희(金顯熙, 1772 壬辰生) == 배위 숙부인 김해김씨

    조부 김교선(金敎善, 1814甲戌生)   =  배위 平山申氏

       부 통정대부 성약장군 용양위부사과 김정준(金正俊, 1839己亥生), 배위 숙부인 경주최씨, 숙부인 전주이씨,

       김덕원(金德元),김원경(金元經) 字덕원(德元) 1876丙子11.26, 1919 기미삼일운동 장두 독립유공

           배위 유인 김해김씨

                자 김규영(金奎榮) 字 창홍창홍

                자 김국영(金國榮)

                       손녀 김추자-가수늦기전에,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동생 김일경(金一經, 1879己卯12.4~1930庚午5.2) = 배위 유인 청주한씨

                      손자 김빈영(金彬榮)

                      손자 김선영(金先榮)

                      손자 김구영(金九榮)

                      손자 김복영(金福榮)

     숙부 김정규(金正圭, 1841辛丑9.3~1872壬申12.25)

                  김성경(金成經, 1875乙亥生~1912壬子5.8)

                           김보영(金甫榮)

재종조  가선대부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김교태(金敎泰,1817丁丑生),  배위정부인 남양홍씨, 정부인 평창이씨   

                          김정기(金正紀, 1850甲戌生)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겸 오위장,   배위 貞夫人川寧崔氏

                                   김홍경(金弘經, 1862壬戌12.29~1932壬申7.4)

                                            김수영(金洙榮)

                                                    남강 김창묵(南江 金昌默, 1922壬戌生~   )

                             (개인비용으로 척야산 문화수목원, 민족정기수련광장 조성자)

                                                               김재용(金在용)

                                             김현영(金鉉榮)

                                    김병경(金秉經) 字 道玄도현,1883癸未生

                                             김원영(金元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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