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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춘성부원군 문의공 박항(春城府院君 文懿公 朴恒), 춘천박씨 시조, 박동보(朴東甫)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1. 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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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부원군 문의공 박항(春城府院君 文懿公 朴恒)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 산2번지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군현 지지 내용에는

춘천을 본관으로

최씨(崔氏), 박씨(朴氏), 신씨(辛氏), 허씨(許氏)의 성씨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춘천 일대에서는 춘천 박씨 이외에는 찿기가 힘들다.

 

문의공 박항(文懿公 朴恒, 1227~1281)

字 혁지(革之),  초명 박동보(朴東甫)

춘천 박씨의 시조는 박씨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40세손이며,

신라 제 54대 경명왕(景明王)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江南大君) 박언지(朴彦智)10세손인 박항(朴恒)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뒤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춘천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문의공 박항(文懿公 朴恒)은

1227(고려 고종14년) 춘성군 장본리(현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에서 출생.

1245년(고려 고종 32년) 18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

             한림원(翰林院)을 시작으로 충주목사와 경상전라 안찰사,

             우정언(右正言밀직부사· 참문학사(參文學事) 등을 역임하였다.

1269(원종 10) 우사간(右司諫)으로 원나라인 몽고에 가서 왕의 입조(入朝)를 알렸으며

1270년  하정사(賀正使)로 원에 다녀왔다.

 

1253(고종40)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원도 안찰사(按察使) 박천기(朴天器)의 혈투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족으로 전사하며,

강원도 동북면의 동주성(東州城, 철원)과 춘주성(春州城,현 봉의산성, 춘천)의 전투에서 

박항의 부모가 사망하였는데

당시 박항(朴恒)은 개경(개성)에 있다가 부모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황급히 춘주성으로 돌아온 그는 성 아래 쌓인 시체 더미 속에서

부모의 시신을 찾았으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자 부모와 비슷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되면

모조리 수습하여 매장했는데 그 수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 한다.

1275(충렬왕 원년) 10월 동지공거가 되어

지공거 한강(韓康)과 함께 최지보(崔之甫) 등을 선발하였고,

12796월에 동지공거 곽여필(郭汝弼)과 함께 조간(趙簡) 등을 선발하였다.

1277(충렬왕 3) 밀직부사애 올라 성절사(聖節使)로 원에 다녀오고,

1278년는 종2 품직의 동지밀직사사에 임명된 후

         왕과 공주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공로로 참문학사(參文學事)가 되었다.

 

춘성부원군 문의공 박항(春城府院君文懿公 朴恒)의

묘역은 제절(除節)이 협소하여

언덕 하단부에 별도의 상석과 묘비 및 문인석을 갖추어서 제례를 올리고 있다.

 

1279(충렬왕 5) 찬성사(贊成事)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당시 고려에 주둔한 원 나라 병사들의 행패가 심하였음을

      고려의 사신으로 원에 간 박항(朴恒)

      원나라 황제에게 상소하여 바로잡기도 하였다.

 

1280년 원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전함, 군량, 군비 등을 징발할 때

      원의 원수 흔도(忻都), 우승(右丞) 홍다구(洪茶丘) 등이 와서

      이를 감독하면서 횡포가 심해지자

     충렬왕에게 건의하여 원 세조 쿠빌라이 칸에게 장계(狀啓)를 보내자,

   원 세조가 좌승상행중서성사(左丞相行中書省事) 김방경(金方慶)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에 임명하게 하여

    혼도와 홍다구의 횡포를 견제하게 하였고,

   동정에 필요한 후방 물자에 관한 조치를 모두 박항이 주관하도록 하였다.

1281(충렬왕 7)  55세의 나이로 졸하였으며,

충렬왕이 박항의 치적을 기려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에 봉하였다

1369년 정몽주가 공민왕에게 상소하여 문의공(文懿公)의 시호가 내려졌다.

 

이후 후손들이 춘천에 세거 하면서 박항(朴恒)을 시조로 하고,

춘천(春川)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문의공 박항묘역 후경

 

묘역에서 내려다 본 제전 석물

 

 

 

 

 

묘역 후면 입수처

 

//춘천박씨 시조 춘성부원군 문의공 박항(春城府院君 文懿公 朴恒) 가계//

2세 평장사 박원굉(朴元宏)  

3세     대제학 박안구(朴安具

4세            시정 박거실(朴居實)

5세             병조판서 박의공(朴義公

2세 판서 박원비(朴元庇

3세    직강 박광선(朴光先) 

3세    생원 박광우(朴光佑) 

3세     대제학평장사 박광정(朴光廷)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3세     박광우(朴光紆)(박광연,朴光衍 또는 박광간,朴光秆)

4세           칠원현감 박농(朴農)

4세           검교사사 박진(朴震)

5세                   진사 박예전(朴禮佃)

5세                   진사 박효전(朴孝佃)

5세                   동부록사 박양선(朴良善)

6세                         진사 박순(朴紃)

7세                               평해군수 박하소(朴夏疏)

8세                                      성균진사 박세주(朴世柱)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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