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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188)-
민족의 지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12/30 [16:29]
▲ (좌) 전 서울대 고 이찬 교수가 1983년 규장각에 기증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모사본. 168x158cm/ (중)
고 이찬 교수 저 한국의 고지도 일어판/ (우) 일본 류코쿠대학(龍谷大学)소장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출처:google/ © 브레이크뉴스
필자가 경제 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우리의 역사를 담은 옛 지도 공부에 빠져 17세기 나주목사(羅州牧使)가 사용하였던 고지도첩을 수집한 적이 있었다.
판본과 필사본 두 가지로 전해지는 옛 지도는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으로 필사본이 대체로 많다.
이러한 필사본 옛 지도는 그림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지도는 당시 엄중한 국가 기밀로 일반인은 물론 막중한 신분이 아니면 소장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옛 지도는 연대순으로 어떤 지도에는 지명이 있다가 지명이 사라지거나 바뀌어 있다.
또한, 역사적인 영토 영역에서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지형을 지혜롭게 활용하였던 내용을 살펴볼 수 있어
역사의 흔적을 지도를 통하여 살펴보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옛 지도에 대한 공부를 해가면서
여러 의문점을 풀기 위하여 많은 분을 찾아다녔으며 그분들의 연구를 공부하였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 연구원으로 계시던 우리나라 고지도 연구에 평생을 천착하신
이상태 선생님이거나 통일원에 계시던 우리나라 영토사 분야에 깊은 연구를 남긴 양태진 선생님과
독도 박물관을 설립하신 주인공으로 지금은 고인이신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님 등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이셨던 이찬 교수님을 만났다.
이찬 교수님은 너무나 자상하게 많은 것들을 살펴주신 분이다.
아마도 전혀 다른 분야에 일을 하는 젊은 친구가
우리의 옛 지도에 관심을 가지고 귀찮게 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교수님은 토요일이면 명동에 자리하였던 경제 연구소를 직접 찾아오셨다.
나는 개인 교습을 받는 학생처럼 많은 것들을 공부하면서 교수님에게 묻고 또 물었다.
훤칠한 키에 영국 신사를 연상케 하던 선생님은 황해도 출신으로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시고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쌀의 문화사’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으신 우리나라 지리학 박사 1호이시다.
이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우리나라 옛 지도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기신 권위자이다.
또한, 교수님은 오늘날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혼신의 열정으로 재현시키신 분이다.
본디 이 지도는 조선 왕조가 세워진 10년 후인
1402년에 제작된 세계지도로 이 지도에 담겨있는 조선 지도가 현존하는 우리나라 지도의 가장 오랜 지도이다.
안타깝게도 지도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4종의 사본이 모두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에 약탈당하였다.
지도는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류코쿠 대학’(龍谷大学)과
나라(奈良)에 소재한 ‘텐리 대학’(天理大学)
그리고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현(熊本縣)에 있는
사찰 ‘혼묘지’(本妙寺)와 나가사키현(長崎県) 시마바라(島原)의 사찰 ‘혼코지’(本光寺) 에 소장되었다.
이와 같은 지도 중에서 ‘류코쿠 대학’ 소장본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62~1611)가 자신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찰
‘혼묘지’(本妙寺) 에 소장하였던 2점 중 한 점을 ‘류코쿠 대학’에 기증한 것이다.
류코쿠 대학’ 소장본은 163cm×158cm 크기의 비단에 채색으로 그려진 지도이며
1988년에 나가사키현에 소재한 사찰 ‘혼코지’에서 발견된 지도는
280cm×220cm 크기의 그림으로 에도 시대에 복제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된 내용에 대한 가장 명확한 문헌은
당시 고려 말과 조선 초의 학자로 시문집 ‘양촌집’(陽村集)의 저자인 ‘권근’(權近. 1352~1409)이 지었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에 대한 발문과 함께
저서 ‘양촌집’ 2권의 ‘역대제왕혼일강리도지(歷代帝王混一疆理圖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정리된다.
1399년 정종(定宗. 1357~1419) 1년에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김사형’(金士衡. 1341∼1407)이
명(明)나라에서 가져온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1389년 명나라 ‘홍무 22년’(洪武)에 중국 의 승려 청준(淸濬)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세계지도
‘대명혼일도’(大明混一图) 또는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와
1401년 ‘박돈지’(朴敦之. 1342~1422)가 일본 사신사로 갔다가 가져온 일본 지도를 바탕으로
1402년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김사형(金士衡. 1341∼1407)과
이무(李茂?~1409),이회(李薈) 등이 제작한 지도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이러한 ‘혼일강리역대국도’는 동양에서 가장 오랜 세계지도로
서유럽과 아프리카 및 서남아시아가 자세히 그려진 지도이다.
이는 중국의 세계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지도로
세계적으로 최초의 세계지도를 제작한 이슬람 계통의 지도 제작법을 가지고 있다.
당시 중국의 옛 지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상세하게 그리지 않았던 점을 보완하여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지도를 제작한 것이다.
이러한 지도의 사본이 일본에 약탈당하여 가장 그 원형의 특징이 잘 담겨있는
일본 ‘류코쿠대학’ 소장본을 보면 비단에 채색으로 그려진 지도 상단에 전서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제목과
‘역대제왕국도’(歷代帝王國都)가 표기되어 있으며 지도 하단에 권근이 쓴 발문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세계 지도사에서 가장 과학적인 지도를 제작하였던 중세 아랍의 지도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세 아랍의 지리학자 ‘무함마드 알 이디시’(Muhammad Al Idrisi. 1100~1165)는
1154년 ‘로제르의 책’(Tabula Rogeriana) 이라는 지리서를 통하여 그가 제작한 세계지도를 발표하였다.
당시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지도 제작법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남쪽을 위로 북쪽을 아래로 표기하는 전통적인 이슬람 지도의 잘못된 방위를 담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 그가 제작한 세계지도를 소개하면서
지도의 부분도에 5개의 섬으로 된 우리나라 신라 지도를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내용이 정리된다.
먼저 페르시아의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Ibn Khordadbeh. 820~912)가
서기 846년에 저술한 저서 ‘왕국과 지리에 대하여’(Kitāb al Masālik w'al Mamālik)의 영향이다.
당시 그가 이슬람 세계의 도시를 잇는 주요한 무역로와 나라에 대하여 중국으로 가는 무역로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신라에 대한 기록을 자세하게 남긴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까닭이다.
또한, 아랍의 역사학자이며 지리학자인 ‘알 마수디’(Al-Masudi. 896~956)는
아랍의 ‘헤로도토스’로 평가받는 인물로 인도양과 홍해 그리고 지중해를 항해하였으며 아프리카를 여행하였다.
그는 947년 그가 평생을 보완하여 펴낸 역사의 백과사전
‘황금과 보석 광산의 초원’(The Meadows of Gold and Mines of Gems)에서
‘중국 바다를 건너 신라라는 나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아랍인들이 정착하여 생활하였던 신라는 비옥한 농토와 맑은 물을 가진 나라로
금과 광석이 많은 나라'로 기록하였던 내용을 참고하였던 것이다.라고 기술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내용들을 참고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무함마드 알 이디시’의 이슬람 세계지도 이후에
바로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1402년 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은 빛나는 역사를 가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1910년 일본의 지리학자 ‘오가와 다쿠지’(小川琢治. 1870~1941)에 의하여
류코쿠대학 소장본을 학계에 알리면서 그 참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일본의 지리학자 ‘오가와 다쿠지’는 원자핵의 양자론 연구를 통한 중간자(pion)이론으로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의 아버지이다.
이와 같은 동방의 조선이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온 세계의 관심과 연구가 집중되어 정밀하게 묘사된 아프리카와 지중해의 해안선과 함께
100여 개의 유럽과 35개의 아프리카 지명과 국명이 명확하게 표기된 내용은 물론
이슬람 지도에서 반대로 표기되었던 남방과 북방의 표기를 바로잡고 있는 놀라운 지도 제작 기술을 세계에 알렸다.
(좌) 서기 846년 페르시아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820~912) 저서 ‘왕국과 지리에 대하여’ 수록 지도/ (우)
1154년 중세 아랍 지리학자 ‘무함마드 알 이디시’(1100~1165)의
1154년 저술한 지리서 ‘로제르의 책’에 수록된 세계지도 /.출처:google/ ©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지도가
일본 교토의 류코쿠 대학에 소장된 사실을 파악한 서울대 이찬 교수님은
1968년 지도의 사진 촬영을 일절 허가하지 않는 일본의 온갖 방해 공작을 물리치고
미국에서 공부하였던 일본의 인맥을 통하여 지도 사진을 입수하였다.
이후 국내의 유명한 초상화 전문가를 일일이 찾아서 지도의 모사 작업에 들어간 후
서예가의 도움으로 지도의 표기를 완성하여 결국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1983년 류코쿠대학 소장본과 같은 필사본 지도가 완성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것이다.
어느 날 연구소에 오신 교수님이 진중한 음성으로 본격적으로 지도 공부를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나를 앞세워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사실 자신이 없었던 이유가 컸다.
이후 교수님은 1988년까지 28년 동안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신 후
1989년 학술원 회원이 되어 대한지리학회장과 국제지리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셨다.
또한, 1992년 평생을 천착하여온 우리의 지도연구를 종합한 ‘한국의 고지도’를 출판하였다.
이어 평생 모아온 우리의 소중한 옛 지도를 2001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신 이후 2003년 영면하셨다.
우리의 정신 ‘혼일강리역대국도’를 약탈해간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을 삼키며
우리의 땅에 우리의 것을 올곧게 놓아두려던 교수님의 15년이라는 혼신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온 세계가 경탄한 아시아와 이슬람권과 유럽 그리고 오지의 아프리카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지도를 제작한
지혜로운 선조의 정신은 일본 땅에서 어둠의 침묵을 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날 민족의 지혜와 정신을 지키신 교수님을 생각하며 조용히 옷깃을 여민다.
지도 공부를 하라고 늘 권유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진흙 밭을 구르며 살아온 허송의 삶이 오직 부끄럽다.
살갗을 스쳐가는 바람은 그대로인데 소중한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뒤늦은 일깨움을 삼키며 이 글을 바친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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