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그린 조선 지도, 현대 지도와 흡사한 까닭
[지도와 인간사] 11세기 알 비루니를 찾아서
19.07.24 16:35 최종 업데이트 19.07.24 16:46 김선흥(ecoindian08)
아래 지도를 보자. 왼쪽 지도는 1402년 조선시대 선조들이 그린 아프리카와 주변 해역이다.
오른쪽은 오늘날의 현대 지도를 강리도의 좌우 폭에 맞추어 본 것이다.
▲ 아프리카와 주변 해역 ⓒ 김선흥
이렇게 보면 아프리카의 윤곽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할 뿐 아니라 주변 해역을 포함한 지리 형세도 잘 보인다.
인도를 찾아보자. 오른쪽 현대 지도를 보면 우측 상단 쪽에 인도의 모습이 보인다.
한편 왼쪽 강리도 상의 인도(붉은 화살표)는 중국에 밀려 방향이 왼쪽으로 틀어져 있다. 방향을 바로잡아 보자.
▲ 강리도의 인도와 현대 지도의 인도 ⓒ 김선흥
놀랍다. 인도의 윤곽이 현대 지도와 거의 같지 않은가.
늘 강리도를 보면서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강리도에는 인도의 오른쪽에 벵갈만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서 축소된 이미지만으로는 인도를 식별하기 어렵다. 중국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강리도의 인도 오른 쪽을 보면 큰 물줄기 하나가 나 있다.
상상으로 그 폭을 확대해 보면 어떨까? 저명한 지도학자 웨이우드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강리도는 1600년 이전 동아시아에서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이다.
최근 개리 레드야드의 노력으로 강리도가 영어권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유럽 등 저 너머까지의 대륙을 그린 놀라운 지도로서 당시 동아시아 초유의 작품이다.
강리도는 인도를 아시아 대륙에 심하게 밀어붙여 놓은 탓에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그
러나 인도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강을 벵골 만으로 변형시켜 보면 인도의 형태가 대체로 바로잡아진다.
유럽의 표현 즉, 지중해, 이베리아 반도, 이태리 반도 그리고 아드리아 해 등은 분명히 식별된다.
강리도는 특별하다.
왜냐면 종전의 동아시아 세계지도는 중화제국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여타 나라들이 주변에 섬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David Woodward, 'Mapping the World', <ENCOUNTERS>(2004)
이 글을 쓴 우드워드는
<지도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 총서의 편집장을 맡았던 지도사학계의 거장이다.
참고로 지도학 분야의 대작인 <지도의 역사>는 1987년 시작 이래 현재 총 8권이 간행됐는데
그 중 아시아 편(약 1000쪽) 표지에 강리도가 실려 있다. 이는 우드워드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강리도를 논할 때 늘 인도가 잘 나타나 있지 않다고 지적되곤 한다.
뿐더러 엉뚱한 곳을 인도라고 해설하는 경우도 있고, 국내의 경우이지만, 인도가 아예 없다고 언급하는 책도 보인다.
때문에 인도의 오른쪽 물줄기를 벵갈만으로 변형해서 살펴보는 웨이우드의 발상은 더욱 신선하다.
간과하기 쉬운 강리도의 가치
이 대목에서 간과하기 쉬운 점이 있다.
14~15세기의 동서양에서 강리도 만큼 근사하게 인도를 그린 세계 지도는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래 사례를 대조해 보자.
▲ 인도와 타프로바나 ⓒ 김선흥
왼쪽은 15세기 말까지 서양의 지배적인 세계상으로 군림했던 프톨레미 지도의 인도 부분(개념도)이고
오른쪽은 당시 이슬람의 그것에 해당된다. 둘 다 인도를 식별하기 어렵다.
우드워드에 의하면 15세기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지도로 평가 받는
프라 마우로(Fra Mauro)지도에서도 인도가 잘 식별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 한다.
요컨대 강리도에서 늘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돼 온 인도마저도 이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우수성이 잘 드러난다.
참고로 위 지도에 보이는 거대한 섬(Taprobana)은
2세기의 프톨레미가 <지오그라피>에서 처음 묘사한 이래로 오랫동안 서양과 이슬람 지도에 나타난다.
실론 혹은 보르네오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제 아프리카를 둘러 싸고 있는 해역에 주목해 보자.
당시 동서양의 어떤 지도도 강리도처럼 아프리카가 넓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그린 걸 찾아 볼 수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의 지도들은 지표에서 차지하는 육지의 비중을 바다보다 훨씬 높게 잡았다.
선진적인 이슬람 지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슬람 지도에서 오직 하나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11세기 알 비루니(al Biruni, 973~1050)의 세계상이다.
알 비루니는 페르시아 출신으로 중세 이슬람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이슬람 황금시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 두 사람을 꼽을 때 이븐 시나(Ibn Sina)와 함께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대학자로서 특히 천문학, 수학, 지리학, 역사(특히 인도 역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경위도를 측정했고 투영법을 고안했다.
무엇보다도 지도에서 프톨레미 지리학의 전통을 탈피하여 인도양을 획기적으로 개방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소개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비판정신의 소유자였다.
고대 그리스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인도 과학이론에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
뭐니뭐니 해도 후세에 가장 잘 전수된 것은 지표상의 육지와 바다의 분포에 대한 그의 과학적 이론이었다. (...)
알 비루니의 지도학에 대한 직접적인 공헌은 지표상의 수륙 분포를 보여주는 세계 개념도이다.
그것은 1238년에 필사된 <점설술의 원리>에 실려 있는데 알 비루니의 독자적인 세계상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이슬람 지도 표준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아프리카의 육지가 동방으로 뻗어 있다는 프톨레미의 유산을 탈피하여
인도양이 남반부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듯한 세계상을 제시했다." -<지도의 역사> 이슬람편
지표상 땅과 바다의 분포비율에 있어서 알 비루니는 당대에 유일무이의 독창성을 보였다.
강리도가 또한 그러하다.
두 지도가 비록 시간적으로 300년 이상의 차이가 있지만
연동되어 있을 거라는 강한 암시를 받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알 브루니의 세계상 스케치만 가지고는 맥락을 이어볼 수 없다.
알 비루니의 다른 지도는 없는 것일까? 나는 애써 찾아보았다.
필시 있을 것 같은데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하나를 찾아 낼 수 있었다.
S. Frederic Starr의 <상실된 지혜>(Lost Enlightenment, 2013)라는 책 속에
알 브루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지도 이미지 하나가 들어 있다.
▲ <상실된 지혜> ⓒ 프레데릭 스타
여기 보이는 고서는 14세기 필사본으로 우즈베키스탄 과학원에서 2006년에 발표한 자료에 들어 있다고 한다.
한편, <상실된 지혜>의 저자 프레데릭 스타는 이 지도 이미지를 별도로 역사 전문 사이트에 제공하고 있다.
▲ 알 비루니 지도 ⓒ 프레데릭 스타
보다시피 남반부가 바다로 가득차 있다.
또 흥미로운 점은 당시 이슬람 지도는 남쪽을 위에 두는 전통이 확립돼 있었는데
이 지도는 북쪽이 위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다 가운데에 큰 원이 보인다.
무슨 섬일까? 실론일 것이다(그 위의 반도는 인도일 것이다).
강리도에도 인도양 한 가운데에 큰 원이 그려져 있는데 그 안에 '해도(海島)'라고 적혀 있다.
▲ 강리도 속 실론 ⓒ 류코쿠대 도서관
두 지도의 큰 원은 모두 실론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위치는 실제와는 달리 인도의 왼쪽 방향에 놓여 있다(아래 지도 참조).
300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두고 있는 알 비루니 세계상과 강리도는 이처럼 여러 면에서 호응하고 있다.
▲ 강리도 류코쿠본 ⓒ CARTOGRAPHIA
알 브루니의 세계상과 지리정보가 강리도에 반영됐다면, 과연 그 경로는 무엇이었을까?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을까? 다음 호에서 살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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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리도, #실론 , #인도, #이슬람 , #알 비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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