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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김덕숭 효자각, 김귀성(金貴誠), 강릉김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2. 2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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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군수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 강릉김씨

충북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산5

 

 

贈兵曹參議慕庵金公神道碑銘

증병조참의모암김공신도비명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

1373(공민왕22)1448(세종30). 1373~

본관 江陵강릉.   자 자수(子修), 호 모암(慕庵).

 

송도(松都)에서 출생한 그는 판윤(判尹) 김천익(金天益)의 아들로,

목은 이색(牧隱 李穡)과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할 때에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글이 나오면 몇 번이든지 되풀이하여 읽었으며,

특히 효경을 좋아하였다

공양왕 4(1392) 고려가 멸망하자, 송도판윤(松都判尹)이던 김천익(金天益)은 벼슬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栢谷面(백곡면) 石峴里(석현리) 楸子(추자) 마을로 낙향하였다.

 

 

1393(태조2)에 김덕숭은 21세에 추천되어 진선(進善)에 제수되었고

사헌부장령을 비롯하여 사헌부집의, 온양군수, 목천현감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부모님을 봉양코자 1404(태종4) 32세에 낙향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1426(세종8) 54세에 한산군수에 제수되었지만

부모 봉양하는 일이 오랫동안 소홀해짐을 염려하여 3개월 만에 사직하고 부모 봉양에 힘썼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고생하여 미나리를 구해드리고 잉어를 먹고 싶어 해서

지금의 백곡저수지 아래 여계소(女溪沼)에 내려가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며칠간 기도를 올렸는데,

무릎 자리가 녹아 생긴 구멍으로 잉어 2마리가 나와 1마리는 살려주고

다른 1마리를 가져와 어머니께 고아 드렸더니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1434(세종16) 62세에 어머니께서 84세로 돌아가시자

묘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정성으로 시묘살이에 임하였다.

1436(세종18)3년상을 마치고 짐으로 와서도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1437년에는 장모인 정씨를 모시고 와서 친부모 봉양하듯 받들어 진천의 유림에서 모두 감탄하였다고 한다.

  

 

1444(세종26)에 세종께서 안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초정(椒井)에 행차시

그의 효행을 듣고 주육(酒肉)과 더불어 백미 10가마를 하사하여 가찬하니

모암(慕庵)은 즉시 아버지 김천익(金天益)과 함께 사은숙배(謝恩肅拜)하니

김천익(天益)90세요, 모암(慕庵)72세였다.

10월 아버지 천익(天益)이 별세하자 어머니와 합장드린 뒤 여막을 짓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치었다.

1448(세종30)에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76세로 별세하니

세종께서 이조참의를 증직하고 천하대효라 칭송하며

어제시(御製詩) 3수를 내리어 정각을 건립하게 하였으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그의 효행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정려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1449(세종31) 6월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

두아들 김귀식(金貴識)과 김귀시(金貴試)에게 벼슬을 내리게 하였다.

1631(인조11)에 효자문을 세우게 하니 정면, 측면 각 1간인 맛배집이다.

이후 신잡(申磼)이 백행지원(百行之源)을 기리는 백원서원을 세우고 김덕숭을 배향하였다.

백원서원은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백원서원이었음을 알리는 유적지만 남아 있다.

 

 

 

 

 

 

通政大夫參議  行通訓大夫西部令  江陵金公貴誠之墓

통정대부참의  행통훈대부서부령  강릉김공귀성지묘

 

 

 

 

 

 

 

 

 

 

 

孝子慕庵金德崇之墓

효자모암김덕숭지묘

 

 

 

 

 

 

朝奉大夫 知韓山郡事 金德崇之墓

조봉대부 지한산군사 김덕숭지묘

 

 

 

 

孝子金德崇之墓

효자김덕숭지묘

 

 

世宗大王御製詩세종대왕어제시

晨昏念切棄官歸

신혼염절기관귀   부모봉양 마음으로 벼슬을 사직하고 집에 돌아와

爲母居仍省父

위모거려잉성부   부모님의 평안함에 평생을 바치었도다.

父埋於野忍家居

부매어야인가거   어머니 산소 옆에서 여묘를 살면서

哀慕終身情益切

애모종신정익절   아침 저녁 전을 올리며 아버지께도 문안 정성 다하였도다.

 

 

                    色養平生志莫違

                    색양평생지막위    평생 부모은혜 어찌 잊으리오 

                    朝晡奠罷拜庭闈

                    조포전파배정위    쉬렴도 하련만 지극정성 여막에서

                    七十遭喪又守廬

                    칠십조상우수려    칠십 지나 아버지 상 성심을 다하니

                    墓前碑表聳州閭

                    묘전비표용주려    묘소 앞 정려문은 빛나는 도다.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의 장자,  증 병조참의 김귀성(金貴誠)

 

 

 

 

 

 

 

 

 

 

贈通政大夫兵曹參議江陵金公貴誠之墓  配贈淑夫人鎭川林氏祔    前配 贈淑夫人順興安氏

증통정대부병조참의강릉김공귀성지묘  배증숙부인진천임씨부    전배 증숙부인순흥안씨

 

 

 

 

 

 

 

 

 

 

 

 

 

 

鎭川金德崇孝子門

진천김덕숭효자문

충북기념물 제143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1224-5

조선 세종 때 한산군수를 지낸 김덕숭은 효심이 대단했다.

엄동설한에 병환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를 위하여 미나리를 구해드리고 잉어를 먹고 싶어하여

지금의 백곡저수지 아래 여계소(女溪沼)에 내려가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며칠간 기도를 올렸는데,

무릎 자리가 녹아 생긴 구멍으로 잉어 2마리가 나와 1마리는 살려주고

다른 1마리를 가져와 어머니께 고아 드렸더니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세종께서 초정에 행차시 그의 효행을 듣고 가찬하자 그는 즉시 부 천익(고려말 송도판윤)과 함께 사은숙배하니

천익은 90세요, 그는 75세였다. 세종 30년에 76세로 별세하니 국왕께서 이조참의를 증직하고

어제시 2수를 내리고 삼강행실도에 그의 효행을 기록토록 했다

 그후 인조 11년에 효자문을 세우게 하니 정면, 측면 각 1간인 맛배집이다.

세종은 김덕숭이 세상을 떠난 1448(세종 30) 그의 효행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하고 정려(旌閭)를 건립하게 하였다.

      

有明朝鮮國孝子 贈通政大夫吏曹參議兼 經參贊官行通訓大夫韓山郡守兼

유명조선국효자 증통정대부이조참의겸 경참찬관행통훈대부한산군수겸

洪州鎭管兵馬僉節制使 原任世子侍講院進善 天下大孝慕菴江陵金公諱德崇先生旌閭碑

홍주진관병마첨절제사 원임세자시강원진선 천하대효모암강릉김공휘덕숭선생정려비

 

진천 김덕숭 효자각은 사곡리 마을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효자문의 담장 밖 오른쪽에는 김천익의 사적비가 위치해 있다.

 관리가 상당히 잘 되어 있어 비문이나 편액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200531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강릉김씨 한산군수 증 이조참의 효자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 가계//

고조부 지문하성사 김계소(金繼紹) 

증조부 참지정사 김광갑(金光甲)

   조부 병부상서 충절공 김사혁(忠節公 金斯革)

아버지 한성판윤 김천익(金天益)

어머니 정부인 경주김씨, 김세진(金世珍)의 따님

          한산군수, 증 이조참의  모암 김덕숭(慕庵 金德崇, 1373~1448) 

          배위 평양조씨,  생1남 조졸(早卒)

          배위 증 정부인 양성이씨,  생4남

          장남 증 병조참의 김귀성(金貴誠)

                      손자 성균진사 김안계(金安繼)

                              증손자 가선대부 경상병사 병마절도사 김언경(金彦庚) 

                                   현손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호(金瑚) 

                            5대손 현감 김흥례(金興禮)

                              증손자 사헌부지평 김언행(金彦幸)

                      손자 장사랑 김임계(金林繼)  진천임씨

                    증손자 호조좌랑 김흡(金洽)

        차남 형조참판 김귀함(金貴諴)

        삼남 김귀계(金貴誡)

              사남 직제학 김귀시(金貴試)

                       손자 김중형(金重兄)

                       손자 김석형(金石兄)

              오남 현감 김귀식(金貴識)

                        손자 김사강(金嗣康)

 

 

 

 

벽암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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