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양평-위양공 이순몽(威襄公 李順蒙), 영천이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8. 3. 23:31

본문

728x90

위양공 이순몽(威襄公 李順蒙) 영천인(永川人)

경기도 기념물 제92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 45-3

 

위양공 이순몽 威襄公 李順蒙, 영천인(永川人)

1386년(우왕12)~1449년(세종31)

본관은 영천(永川).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응(李膺)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로 판서 최병례(崔丙禮)의 딸이다.

1386년(고려 우왕 12) 영천에서 태어났다.

1401년(태종1)에 아버지의 부임지인 경기도 이천으로 따라가 모셨으며,

1405년(태종5)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올라 총제(摠制)로 승급되었다.

1417년(태종17) 4월 무과 복시(覆試)에 합격하였고,

1418년 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동지총제가 되었고 1419년(세종1) 우군절제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경상좌도병마절제사, 중군도총제, 좌군도총제, 충청도병마도절제사,

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9년 우군절제사로 이종무(李從茂), 우박(禹博), 박초(朴礎) 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패하였으나

이순몽은 김효성(金孝誠)과 함께 대전과를 거두어, 대마도주 도도웅이(都都熊耳)가 항복하고 수호를 요청하였다.

 

1425년(세종7) 진하사(陳賀使)로 중국에 들어가 선종(宣宗)이 즉위함을 축하하였다.

1433년(세종15년) 중군절제사가 되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인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여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자,

세종은 노비와 의화(衣靴)를 내려주었고 총애가 극진하였다.

1434년 경상도도절제사, 1435년 9월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가 되었고,

1438년(세종20년) 군기감 제조(軍器監提調)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겸임하였다.

1447년(세종29)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로 승진하였으며,

1449년(세종31) 8월 본가에서 64세를 일기로 졸 하였다.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영천의 삼현사(三賢祠)와 숭렬당(崇烈堂)에 봉향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에 있으며, 진성(眞城) 이원윤(李源胤)의 갈문(碣文)이 있다

領中樞院事永川李公之墓            正德己巳

        영중추원사영천이공지묘             1509(중종4)

 

輔國崇祿大夫 領中樞院事 贈諡威襄永川李公之墓 配貞敬夫人綾城具氏祔左

보국숭록대부 영중추원사 증시위양영천이공지묘 배정경부인능성구씨부좌

 

//영천이씨 위양공 이순몽(威襄公 李順蒙) 가계//

 증조부 부사 이유(李瑜

    조부 밀직부사 이희충(李希忠

아버지 병조판서 이응(李膺

어머니 정경부인 전주최씨, 판서 최병례(崔丙禮)의 따님

           위양공 이순몽(威襄公 李順蒙)

           배위 정경부인 능성구씨, 병사 구종절(具宗節)의 따님

                     1녀 사위는 부윤 정자제(鄭自濟)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