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화성-선무원종공신 한명윤(韓明胤), 밀양박씨 박행장(密陽朴氏 朴行狀), 충렬각(忠烈閣)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9. 2. 22:22

본문

728x90

청주한씨 선무원종공신 한명윤(韓明胤), 밀양박씨 박행장(密陽朴氏 朴行狀), 충렬각(忠烈閣)

화성시 향토유적 제5호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 189-6

 

忠烈門亭충열문정

 

忠臣 淸州韓公明胤 烈女配密陽朴氏行狀 之遺蹟碑

충신 청주한공명윤 열녀배밀양박씨행장 지유적비

 

청주한씨 충신 한명윤(韓明胤)

본관은 청주(淸州). 字는 회숙(晦叔).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한이(韓頤)이며,

부인은 정부인 밀양박씨 박행장(朴行狀)으로 현감 박인(朴寅)의 따님이다.

 

한명윤(韓明胤)[1542~1593]은 1568년(선조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추천으로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이 되었다.

1590년 영동현감으로 부임하여 치적을 쌓고

1592년(선조 25) 9월 27일 영동현감(永同縣監)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본 고을을 굳게 지키면서 백성들을 안집(安集)시켰으며,

의병을 모아 용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 충용(忠勇)을 가상히 여겨 품계를 올려 주고 조방장(助防將)을 겸하게 하였다.

1593년(선조26)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제수되어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여 활동하던 중

10월 52세로 전사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오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한편 한명윤은 출전하는 길에 부인 밀양박씨에게 멀리 피신할 것을 권유했으나

밀양박씨는 결연히 남편과 함께 죽음을 택하기를 원하면서 피신하지 않았다.

얼마 후 왜적이 침입해 오자 가솔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내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원하겠느냐”하면서 비수로 자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다.

 

또한 선조는 한명윤(韓明胤)과 그의 처 밀양박씨의 순절을 가상히 여겨

고향인 양감면 정문리에 충열문(忠烈門)과 열녀문(烈女門)을 내렸다.

1986년 5월 20일 경기도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忠臣 韓公遺蹟 충신한공유적

 

 

忠烈門충열문

 

忠臣 贈嘉善大夫吏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尙州牧使 兼防禦使 韓明胤之門

충신 증가선대부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행통정대부상주목사 겸방어사 한명윤지문

 

烈女 贈嘉善大夫吏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尙州牧使 兼防禦使

韓明胤之妻 贈貞夫人密陽朴氏之門

열녀 증가선대부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행통정대부상주목사 겸방어사

한명윤지처 증정부인밀양박씨지문

 

보호수 경기-화성-6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