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嶺南樓)
보물 제147호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40)
밀양 영남루(嶺南樓)
신라 법흥왕 때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금벽루(金壁樓)라는 종각으로 쓰이던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 중엽에 절은 없어지고 작은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1365년(공민왕14) 김주(金湊)가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이 거듭되었는데
1459년 세조 5년에 밀양부사 강숙경(姜淑卿)이 중수하며 규모를 키우고
1542년 중종(中宗) 37년 밀양부사 박세후(朴世煦)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로 타 버렸다.
1637년 인조(仁祖) 15년에 밀양부사 심흥(沈興)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34년 순조 34년에 실화로 불에 탄 것을
1844년 헌종10년에 밀양부사 이인재(李寅在)에 의해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영남루의 동쪽에는 능파각(凌波閣), 서쪽에는 침류각(枕流閣)이라는 2채의 부속건물이 있다.
객사로 쓰이던 천진궁(天眞宮)이 있으며,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고 편액된 누각답게 밀양강을 끼고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진주의 촉석루(矗石樓,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6호, 건립시기-1241년(고종 28),
평양의 부벽루(浮碧樓, 북한 국보유적 제17호, 건립시기-393년 1614년 중건)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린다.
영남루 일주문(嶺南樓 一柱門)
枕流閣 嶺南樓(침류각과 영남루)
枕流閣(침류각)
밀양 영남루(嶺南樓), 보물 제147호
嶠南名樓 嶺南樓 江左雄府
교남명루 영남루 강좌웅부
교남명루(嶠南名樓: 문경새재 남쪽에 있는 이름 높은 누각)와
강좌웅부(江左雄府: 낙동강 왼쪽에 있는 큰 고을)의 편액은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의 글씨
嶺南第一樓영남제일루
편액은 영남루를 중수한 부사(府使) 이인재(李寅在)의 아들인
이증석(李憎石)이 1843년 계묘년 헌종 9년에 열 한 살의 나이로 썼다고 한다.
북쪽의 영남루 편액은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이 64세(戊申, 1788) 때 쓴 것으로 추증되며
강쪽에 걸린 영남루 편액은 성파(星波) 하동주(河東州)의 글씨라 한다.
강을 바라보는 곳에 걸린 영남류 편액은 이인재의 아들인 이현석(李玄石)이 일곱 살 때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성여화(江城如畵)
墉金樓용금루
현창관(顯敞觀)
영남루에 오르니 넓은 세상이 펼쳐짐을 느끼다.
능파각(凌波閣)(
능파(凌波)란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美人)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의미한다.
또한 파도(波濤)를 넘는다는 뜻도 있다.
침류각과 마찬가지로 단기 4290년 (1957년 9월), 정유추 배수환(丁酉秋 裵綉煥)
영남루에서 내려다 본 밀양강과 밀양교 전경
침류각과 영남루를 연결하는 계단식 회랑인 월랑(月廊)의 내부 계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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