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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영응 이지남(永應 李至男), 소격서 참봉 영응 이지남, 연안이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11. 2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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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이씨 소격서 참봉 영응 이지남(永應 李至男)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100-1

소격서 참봉 영응 이지남(永應 李至男)                       벽암두릉연가

1529년(중종24) ~1577년(선조 10)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단례(端禮), 號는 영응선생(永膺先生).

병절교위(秉節校尉) 이필(李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이계장(李繼長)이고,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이언침(李彦忱)이며, 어머니는 홍문관박사 안한영(安漢英)의 딸이다.

스스로 힘써 행할 줄 알았으므로 효성 있는 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직언으로 탄핵을 받고 순창군수로 좌천된 아버지를 따라가 그 곳에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의 제자가 되었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자(字)와 자설까지 지어주었으며, 이 때 이소재(履素齋) 이중호(李仲虎)에게도 배웠다.

뒤에 아버지가 서천으로 귀양가 죽자 지성으로 장사지내고

3년간 여막살이를 하여 나이 20도 못되어 지효(至孝)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다.

1572년(선조5) 학행이 있는 선비를 천거할 때 소격서(昭格署)의 참봉에 제수되었다.

1577년(선조10)에 어머니 광릉안씨가 이질(痢疾)을 앓아 증세가 위급하자 목욕하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호소했다 한다.어머니는 차츰 회복되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시탕(侍湯: 약을 써서 병환을 시중함)과 간호에 지쳐서 피를 토하다가

그 해 8월에 죽으니 사람들이 연안의 읍호(邑號)를 따라 ‘영응선생’이라 하였다.

 

이기직(李基稷), 이기설(李基卨) 두 아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쌍벽(雙壁)·연주(聯珠)라고 일컬었다.

맏아들 이기직은 아버지의 상사에 지나치게 슬퍼해 23세에 죽고,

시집 안 간 누이도 애통해하다가 18세에 죽으니 향교구동(鄕校舊洞)에 사는 사람들이 지극한 효성을 조정에 알려,

인조의 특명으로 효자문과 정려가 세워졌다.

어머니 광릉안씨와 부인 동래정씨, 아들 이기직·이기설, 딸 모두 그와 더불어 표창을 받아

한 집에 여섯 정문이 세워졌으며, 임금이 효자삼세(孝子三世)라는 편액을 내렸다.

그 뒤 연봉 이기설(蓮峯 李基卨)의 아들 충현공(忠顯公) 이돈오(李惇五)와

충민공(忠愍公) 만사 이돈서(晩沙 李惇敍) 및 이돈오의 처 김씨가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순절해 모두 정려되어,

여덟 개의 정문이라는 뜻에서 팔홍문(八紅門)이라 일컬었다.

承訓郞行昭格署參奉 延安李公至男之墓 孺人東萊鄭氏祔

승훈랑행소격서참봉   연안이공지남지묘   유인동래정씨부

孝子承訓郞行昭格署參奉 延安李公永應諱至男之墓 配節婦孺人東萊鄭氏祔

효자승훈랑행소격서참봉  연안이공영응휘지남지묘  배절부유인동래정씨부

묘역 후경

 

 

//연안이씨 영응 이지남(永應 李至男, 1529(중종24)~1577(선조10)가계//

   고조부 이인충(李仁忠) 청백리 승정원 숭지

   증조부 이필(李弼) 증 이조참의

할아버지 이계장(李繼長) 남부참봉

   아버지 이언침(李彦忱) 사헌부장령

   어머니 광릉안씨, 홍문관 박사 안한영(安漢英)의 따님 절행전(節行傳)

            연안인 영응 이지남(永應 李至男) 소격서 참봉 적성 수정산 서향

            배위 절부 동래정씨, 정원(鄭源)의 따님

                  장남 수재 이기직(秀才 李基稷) (효자정려)

                        배위 영일정씨,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따님

                  차남 연봉 이기설(蓮峯 李基卨) 행용양위부호군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청백리(효자정려)

                        배위 증정부인 양천허씨, 참봉 허진(許))의 따님

                        배위 증정부인 전주이씨, 승지 이철(李鐵)의 따님

                  장녀 처자 연안이씨 (효녀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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