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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효자 신효(申皛), 효부 증 숙부인 밀양박씨 지려, 통예원인의 신희갑(申希甲),통덕랑 신수(申銖),성균진사 신사인(申思仁),통덕랑 신잠(申簪), 평산신씨 이상공파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3. 2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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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당 신숙서(竹堂 申叔胥)의 5세손 효자 신효(申皛), 효부 증 숙부인 밀양박씨 지려

충남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771-1

 

효자신공(孝子申公), 효부박씨(孝婦朴氏) 정려문

공의 휘는 효(皛)이고, 자는 백이(白而)이다.

효자 신효(申皛, 1584~1660)는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에 살았던 인물로

아내 증 숙부인 밀양박씨와 함께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1630년(인조 8) 부부가 함께 명정을 받아 정려가 건립되었다. 

신효는 본관이 평산이요, 자는 백이(白而)이다.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면천으로 유배되었던 죽당 신숙서(竹堂 申叔胥)의 5대손이다. 

신효(申皛)는 천성적으로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가 병환에 들자

처 밀양박씨와 함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으며,

 밀양박씨는 시부모의 병세를 알아보고자 똥을 맛보기도 하였다. 

부모가 병석에 오래 누워 있어 등창이 생기자 입으로 빨아내는 등 극진히 봉양하였다. 

한겨울 얼음 속에서 잉어를 잡고, 오이와 애호박을 구하여 시부모에게 대접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고을에 널리 알려져 신효(申皛)가 46세 되던 1630년에 부부가 함께 명정을 받았다.

1743년(영조19) 7대손 신광신(申光信)에 의해 정려각이 중수되었으며,

2013년 후손들이 현재의 771-1번지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정려 내부 상단에는 1743년 전주인 이동윤(李東允)이 쓴

 ‘효자신공효부박씨 정려기(孝子申公孝婦朴氏旌閭記)’ 현판과 

1885년(고종 22) 6월에 쓴

 ‘효자 증통훈대부 사헌부감찰 평산신공휘효지려 효부 증숙부인 밀양박씨지려

(孝子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平山申公諱皛之閭 孝婦贈淑夫人密陽朴氏之閭)’ 명정 현판이 있다. 

孝子 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 平山申公諱皛之閭 孝婦申皛之妻淑人密陽朴氏之閭

효자 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 평산신공휘효지려 효부신효지처숙인밀양박씨지려

孝子 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 平山申公諱皛之閭 孝婦贈淑夫人密陽朴氏之閭

효자 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 평산신공휘효지려 효부증숙부인밀양박씨지려

 

 

 

 

 

 

 

 

통예원인의 신희갑(申希甲),   통덕랑 신수(申銖),   성균진사 신사인(申思仁),   통덕랑 신잠(申簪)

충남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산 101-1

通訓大夫通禮院引儀 平山申公諱希甲 配淑夫人南平文氏合祔

통훈대부통예원인의 평산신공휘희갑 배숙부인남평문씨합부

 

通德郞平山申公諱銖之墓 配恭人鎭安李氏祔

통덕랑평산신공휘수지묘 배공인진안이씨부

 

成均進士平山申公諱思仁之墓 配淑人固城金氏祔

성균진사평산신공휘사인지묘 배숙인고성김씨부

 

通德郞平山申公諱簪之墓 配恭人東萊鄭氏祔

통덕랑평산신공휘잠지묘 배공인동래정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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