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境),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 73-5, 202
김정희선생 필적암각문(金正喜先生 筆跡岩刻文)
시경(詩境)
시경(詩境)은 화암사 대웅전 뒤 오석산 병풍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시경(詩境)은 시의 경계(境界) 또는 시흥(詩興)을 불러일으키는 풍취(風趣)라는 뜻으로 좋은 경치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선생이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覃溪) 옹방강(翁方鋼)으로부터 받은 탁본 글씨를 새겨놓은 것이다.
예서(隸書)로 쓴 이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인물인 방옹 육유(訪翁 陸游)의 글씨다.
추사 김정희선생은 이 좋은 글씨를 후대에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이곳 병풍바위에 새겨 놓은 곳이다.
일각에서는 김정희선생의 친필이라는 견해가 있어 연구가 필요한 필적(筆跡)이라 한다.
예산 추사 고택 인근 화암사(華巖寺) 뒤 병풍바위에 새긴
김정희의 예서 글씨. 시경(詩境)은 시적인 좋은 풍경, 시의 궁극적 경지를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김정희는
"글씨 쓰는 법(書法)은 시의 품격 ·그림의 정수와 더불어 그 오묘한 경지와 같다" 고 말한 바 있다.
이 글씨는 최근 추사가 쓴 글씨로 재평가되었다.
김정희선생 필적암각문(金正喜先生 筆跡岩刻文)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선생이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覃溪) 옹방강(翁方鋼)의 집 대문 양쪽에
상견동파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이라는 문구를 떠올려
이곳 화암사(華巖寺) 뒤편 병풍바위에 유려한 행서로 새겨놓은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소동파를 흠모하던 선비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문구이다.
소동파와 석가모니를 동일시한 것으로 추사 김정희선생이 얼마나 소동파를 흠모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추사(秋史)는 김정희의 호(號)가 아니라 자(字)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1810년 청나라를 방문하여 청나라 문인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은 정희(正喜)이고,
자(字)는 추사(秋史)이며, 호는 보담재(寶覃齋)라고 적은 것이 있다고 한다. 보담재 ?
그는 충청도 예산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 자는 원촌(元春),
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노(果老), 과파(果坡), 농장인(農丈人),
보담재(寶覃齋), 담연재(覃硏齋), 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승련노인(勝蓮老人)등 80여 개에 이른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