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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율암 최몽량(栗庵 崔夢亮), 옥천 최호주(玉泉崔鎬周), 최호문(崔鎬文)의 처 나주정씨, 경주최씨 삼강정려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7. 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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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최몽량, 최호주, 나주정씨 삼강정려(崔夢亮, 崔鎬周, 羅州丁氏 三綱旌閭)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170-4

최몽량(崔夢亮, 1579~1627)과, 효자 최호주(崔鎬周), 나주정씨(羅州丁氏) 삼강정려(三綱旌閭)는

경주최씨 충신 최몽량과 효자 최호주 그리고 최호문(崔鎬文)의 아내인 열녀 나주정씨의

명정현판을 한데 모은 정려각이다.

 

충신 율암 최몽량(栗庵 崔夢亮)은 자가 계명(啓明), 호는 율암(栗庵)으로, 광해군 때 과거에 급제한 뒤

1624년(인조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扈從)하여 공주로 피난하였으며,

1627년(인조5) 정묘호란 때 의주판관으로 싸우다가 청나라 군대의 포로가 되어 항복을 거절하고

동생 오천 최몽직(梧川 崔夢稷)두 조카 최호(崔浩), 최준(崔濬)과 함께 처형되었다.

문경공 갈암(文敬公 葛庵 李玄逸)1690(숙종 16) 93일 이조참판 재직시

숙종 임금에게 최몽량(崔夢亮)의 행적을 칭송하며 정려를 내릴 것을 청하였고,

숙종은 곧 바로 비답(批答)을 하였다.

그러나 정려는 당시에 건립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며 명정문에 의하면 정려는

1748영조24년에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1757년(영조33) 충신 정려와 함께 자헌대부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에 증직되고,

순조때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909년 순종3년에는 지방관으로 하여금 치제(致祭)하도록 하여 율암 최몽량(栗庵 崔夢亮)의 공을 다시 평가하였다.

 

효자 옥천 최호주(玉泉 崔鎬周)는 율암 최몽량(栗庵 崔夢亮)의 10세손으로 호는 옥천(玉泉)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지성으로 간병하였다.

병세가 차도가 없음에도 낙심하지 않고 천지신명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한편

영지를 구하여 드리는 등 더욱 정성을 기울여 마침내 아버지를 회생시켰다.

이러한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42년(또는 1902년) 조정에서 효자 정려와 더불어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증직하였다.

 

열녀 나주정씨효자 옥천 최호주(玉泉 崔鎬周)의 동생 최호문(崔鎬文)의 아내로,

남편이 병석에 눕자 산천에 기도하며 지성으로 간병하여 낫게 하였다.

그러나 3년 뒤에 다시 병이 들어 위독한 상태에 이르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멱여 3일간 연장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열녀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920년 정려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효자 옥천 최호주(玉泉 崔鎬周) 효자비

忠臣 贈資憲大夫吏曹判書兩館大提學通訓大夫行義州判官贈諡忠毅公崔夢亮之門

충신 증자헌대부이조판서양관대제학통훈대부행의주판관증시충의공최몽량지문

英廟丁丑三月 日命旌

                    영묘정축삼월 일명정(1757년 3월)

 

孝子 贈正三品通政大夫秘書院丞慶州崔鎬周之門

효자 증정삼품통정대부비서원승경주최호주지문

上之二十九年庚寅十一月 日 命旌

상지이십구년경인십일월 일 명정

 

烈女 學生崔鎬文妻孺人羅州丁氏之門

열녀 학생최호문처유인나주정씨지문

孔夫子誕降二千四百七十年庚申七月 日 表旌

                   공부자탄강이천사백칠십년경신칠월 일 표정(1920년7월)

 

 

//경주최씨 최몽량, 최호주, 나주정씨 삼강정려(崔夢亮, 崔鎬周, 羅州丁氏 三綱旌閭) 가계//

7대조 송음거사 관가정공 최청(松蔭居士 觀稼亭公 崔淸)

 

         충신 충의공 율암 최몽량(忠毅公 栗菴 崔夢亮, 1579~1627)

 

        10대손 효자 옥천 최호주(玉泉 崔鎬周)

        10대손 최호문(崔鎬文)

                    배위 열녀 유인 나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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