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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중추부사 낙애 김환(樂崖 金鍰), 지추공 낙애 김환(樂崖 金鍰),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7. 2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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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추부사 낙애 김환(樂崖 金鍰)

강원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 산 159

조선조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때,

당시로는 무척 드물게  94세까지 살았던 낙애(樂厓) 김환(金鍰, 1650~1744)이란 사람이 춘천에 낙향해 있었다.

생전에 무려 8명의 임금을 모시었으며,  벼슬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까지 올랐고,

89세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기로사(耆老社)에 들었다.

그리고 92세인 1942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때 영조로부터 호랑이 가죽을 하사받았다.

영조의 총애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는데,

낙애를 모시고자 어시(御詩)를 내렸고,

후손들은 어시를 보존하기 위해서 어필각(御筆閣)을 짓고 어시를 대리석에 새겨 보존하였으나,

6.25 동란으로 어필각(御筆閣)은 사라지고 원본 또한 멸실되었다. 

 

資憲大夫五衛都摠府都摠管知中樞府事知敦寧府事安東金公諱鍰

配貞夫人全州李氏祔右   配貞夫人密陽朴氏祔左

자헌대부오위도총부도총관지중추부사지돈녕부사안동김공휘환

배정부인전주이씨부우   배정부인밀양박씨부좌

英朝大王御製親筆詩 (英祖十四年八月一日, 1738年)

                                                        영조대왕어제친필시

我朝三百年來也 今卿父子半乎哉

特命陞超意有在 耆府宜謝朱門開

조선왕조 삼백년을 이어 왔는데

이제 경의 부자가 절반이구려

특히 명하여 내리는 뜻이 있으니

기부는 주문을 열어 맞이하네

 

金鍰親呈榻下詩 (英祖十八年九月四日,1742년)

                                                            김환친정탑하시

命召催宣九耋臣 威顔咫尺玉音新

榮優老老恩何報 惟祝齊天壽萬春

아흔노신을 재촉하여 불러주시니

위에 있는 용안 지척에서 옥음이 새롭나이다

넘치는 영광을 노신은 무엇으로 갚으리오

오직 하늘과 나란히 만년 장수하길 비옵니다.

 

지중추부사 낙애 김환(樂崖 金鍰, 1650~1743)

公의 諱는 환(鍰)이요.  字는 子仲(자중)  號는 낙애(樂崖)로 익원공의 9대손이고, 문정공의 6대손이며,

참의공 휘 언침(彦沉)의 증손이요.

판결사공 휘 효건(孝建)의 넷째아들로 1650년 효종1년에 용인에서 탄생하였다.

1689년 기사 사마시에 진사가 되고

1691년 숙종 17년 신미문과 갑과에 급제하여 장흥고 직장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내고 1708년경 춘천으로 낙향하였다.

1738년 영조14년 8월 89세로 상소문(上疏文)을 올리니,

영조가 보고 귀한 상소이니 만나고자 하여 89세에 영조를 알현(謁見)하게 되었다. 

영조는  도총관으로 승차시키고 지중추부사를 내리며,

공의 부자가 150년 동안 국가에 기여한 공을 높이 치하하고

어필(御筆)을 하사(下賜)하고 기사(耆社)에 들게 하였다.    그 어시(御詩)에 이르기를

我朝三百年來也  今卿父子半乎哉  特命陞超意有在  耆府宜謝朱門開 

아조삼백년래야  금경부자반호재  특명승초유의재  기부의사주문개  라 하였다

4년후인 1742년 영조 18년 9月 4日

왕이 명소(命召)를 내려 상견(相見)하기를    원(願)하였는데 공의 나이 93세였다.

그러나 공은 정력(精力)이 아직 강건하여 응대(應待)하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

승지가 시(詩)에 능하다고 진언하자 왕의 명에 의하여

즉시 칠언절구(七言絶句) 시를 지어 올리니

임금이 감동하시고 호피(虎皮)를 상으로 하사(下賜)하였다.  그 시(詩)에  

命召催宣九耋臣  威顔咫尺玉音新 榮優老老恩何報  惟祝齊天壽萬春  

명소최선구노신 위안지척옥음신 영우노노은하보 유축제천수만춘  이라 하였다.

 

영조는 봉조하(奉朝賀)를 제수(除授)하고자 하였으나

현직이 아니라 지돈녕부사로 여생을 마치도록 하였으며

그 후 장남 정관(正觀)을 불러 치하하고 사초(史草)에 올렸으니

가지고 가서 가보(家寶)로 삼으라 하였으며 장남에게 즉석에서 벼슬을 제수하였다.

공은 가문 족보편찬사업에도 앞장서서,

1739년에 발행한 안동김씨 기미대보 서문을 찬하였다.

공은 1743년 3월3일에 94세로 여생을 마치니 

장지는 산세가 유난히 수려한 춘천시 동산면 구암리(春川市 東山面  鳩岩里)에 마련하였다.

낙애 김환(樂崖 金鍰) 묘역후경

   

 

 

 

지중추부사 낙애 김환(樂崖 金鍰)의 장손자 김주(金籒)

安東金公諱籒 配慶州李氏祔左 配龍仁李氏祔左之墓

안동김공휘주 배경주이씨부좌 배용인이씨부좌지묘

묘역측경

//안동김씨 익원공파 지중추부사 낙애 김환(樂崖 金鍰, 1650~1743) 가계//

  9대조 익원공 낙포 김사형(翼元公 洛圃 金士衡)

증조부 형조참의 증 영의정 김언침(金彦沉, 1514~1584)

   조부 포천현감 김근(金瑾, 1538~1594)

   숙부 선교랑 김충건(金忠建, 1591~1654)

  부친 장예원판결사 경현 김효건(警弦 金孝建, 1584~1666)

          형님 부호군 김호(金鎬, 1636~1721)

          형님 통덕랑 김횡(金鐄, 1640~1675)

          형님 수 첨추 김전(金鐫, 1647~1734)

          동생 통덕랑 기은 김거(岐隱 金鐻, 1653~1692)

          동생 김추(金錘)

          지중추부사 낙애 김환(樂崖 金鍰, 1650~1743)

          배위 정부인 전주이씨, 진사 증 참판 이진방(李震坊)의 따님

          배위 정부인 밀양박씨, 찰방 박유임(朴惟任)의 따님

                     장남 사릉참봉 증 이조참판 운곡 김정관(雲谷 金正觀,1672~1743)

                     배위 정부인 초계정씨, 통선랑 정수업(鄭洙業)의 따님

                                 손자 김주(金籒)

                     차남 통덕랑 두릉 김정겸(杜陵 金正謙, 1675~1712)

                     배위 공인 한산이씨. 현감 이석근(李石根)의 따님

                     삼남 김정태(金正泰)

                     사남 통덕랑 김정환(金正渙, 1693~1767)

                     배위 공인 연안이씨, 이만주(李萬周)의 따님

                     오남 통덕랑 김정임(金正臨, 1700~ ? )

                     배위 공인 광주안씨, 안필태(安必泰)의 따님

                     배위 공인 평창이씨, 이광윤(李光潤)의 따님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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