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예산-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 일산 이수정(一山 二水亭)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9. 10. 23:37

본문

728x90

예산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충남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 106번지

 

예산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

예산 대술에서 흘러오는 달천이 화산천에 합류되어 흐르다

청양에서 흘러오는 신양천과 만나

예당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 동산 위에 정자가 있다.

 

예산 일산이수정은 전주이씨 가문의 명사인 이철수(李喆洙, 1824~1896)에 의하여

1849년(헌종 15)에 지은 정자로서 전주 이씨 집안의 자녀교육을 위한 서당으로 알려져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일산이수정이라는 이름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지었으며,

앞면에는 추사 김정희가 직접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김정희가 제주도 귀양에서 9년 만에 풀려난 이듬해에 며칠간 이곳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때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썼다고 한다.

일산이수정은 예산군 대술면의 달천과 청양군 운곡면의 신양천이 만나는 지점의 작은 동산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러한 주변 지형지세를 보고

'산 하나와 물길 둘'이라는 뜻으로 일산(一山) 이수(二水)의 정(亭) 이라 하여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이라 이름을 지었다.

김정희는 단순한 글자인 '일一'과 '산山'은 세로로 한꺼번에 써서 뒤의 복잡한 글자인 '정亭'자와 균형을 고려하였다.

 

20세기 들어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은 신교육을 위한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1920년경에는 국문강습소가 개설되었고,

1923년에는 현 신양초등학교의 전신인 신양공립보통학교 건물로 쓰였다.

일산이수정은 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하여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이자

한 집안의 교육을 맡은 장소였으며

근대 초기 공교육의 장소로도 쓰였다는 점에서 예산지역 교육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후면에서 바라본 일산이수정

   

 

 

 

 

 

추사 김정희(1786~1856)17866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태어났으며,

1840820일  55세에 제주도로 유배되어

18481269년 만인 64세에 유배가 풀리게 되었고 한양에 올라오기 전 고향 예산에 4~5일 머무를 때,

38살이나 차이 나는 고향 후배인 이철수(李喆洙, 1824~1896)의 초대를 받아

막 신축된 정자에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이란 현판글씨를 써주었다고 합니다.

 

일산이수정과 추사고택은 약 24km정도로,

추사는 신축한 정자에서 일산(一山)을 위아래 쓰고

물수() 자의 중앙획을 거꾸로 하여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 이라는 현판을 썼으니,

이를 해학적 관점과 풍수지리적 비보관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한다.

壯觀登臨處 任城第一樓 

장관등임처 임성제일루 === 올라와보니 장관 임존성제일누각

山迎明月出 水擁斷雲流

산영명월출 수옹단운류 === 산은 밝은달을 맞이하고 물은 조각구름 품었네

酒暖花開日 墨寒木落秋

주난화개일 묵한목락추 === 꽃피면 술익고 차가우면 낙옆지니

人歸名不朽 今上憶前遊

인귀명불후 금상억전유 === 사람은 이름을 남기니 여기 올라 옛추억 생각하네

                                                                                                   이종환(李鍾渙)

 

멀리 원경에서 바라본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