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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가선대부 부평도호부사 증 대사헌 김성동(金誠童),부호군 증 좌승지 김려(金濾)

구름에 달

by 碧巖 2024. 6. 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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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의 둘째사위  가선대부 부평도호부사 증 대사헌 김성동(金誠童)

경기 시흥시 하상동 산5

嘉善大夫行富平都護府使金公之墓 貞夫人姜氏 之墓

가선대부행부평도호부사김공지묘 정부인강씨 지묘

가선대부 부평도호부사 증 대사헌 김성동(金誠童,1452~1495 연산군1=44)

본관 안동. 자 명보(明甫).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492년(성종 23) 적성현령(赤城縣令)으로 있던 그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나가,

2년이 못 되어 선정과 치적이 조정에 알려져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5년도 채 못 되는 관직생활에도 공무에 대한 성실성과 뛰어난 인품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재상감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44세를 일기로 졸 하였다.

잠조당 박처륜(潛照堂 朴處綸)과 함께 성종대의 가장 유능하고 성실한 관리로 꼽혔다.

묘소는 쌍분으로 이루어진 봉분 앞에는

방부이수(方趺螭首) 양식의 백(白) 대리석의 묘갈이 건립되어 있고

새로 단장한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문인석, 옛 문인석 한 쌍이 있다.

묘갈의 비문은 동래인 호음 정사룡(湖陰 鄭士龍,1491~1570)이 짓고

김해인 감사 김종수(金從壽)가 썼다.  비신 건립 연대는 ‘가정 15년(1536년) 12월 입석’ 이다.

 

용재총화(慵齋叢話) 기록                            대제학 용재 성현(慵齋 成俔, 1439~1504)

중추 김성동(金誠童)은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의 아들이다.

집이 남대문 밖 연지(連池) 곁에 있었는데,

키가 아홉자요 성품이 침착하고 신중한데다가 말이 없고

손님이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항상 방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얘기하지 않고 종일토록 책만 읽었다.

적성 현감(縣監)을 지낸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갑과(甲科)에서 3등으로 뽑혀 당상관(堂上官)이 되었다.

부평(富平)에서 수령으로 있을 때 공무를 당하여서는 청렴하고 신중하였고

일은 시원스럽게 처리하였으며 조세를 독촉하는 일이 없어,

백성이 편안하게 살며 부모처럼 섬기었다.

그때 감사가 임금에게 선정(善政)을 아뢰어

특별히 중추원(中樞院)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가 공무(公務)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을까

골몰하면서도 집안일은 조금도 경영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 원대함을 보고 기대하기를, “참으로 재상감이다.”하였는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부부가 모두 졸 하였다.

집의 윤수언(尹粹彦)은 내 친구 윤자방(尹子芳)의 아들인데,

집의 김성동의 집과 이웃에 있었다.

사람됨이 문무(文武)에 뛰어나서 소년으로 등제(等第)하여

사인(舍人)으로부터 나아가 집의(執義)가 되고,

아침저녁으로 은대(銀臺)에 오르기를 지척(咫尺)에 있는 것 같이 여기었다.

평안도에 사신으로 갈 때에 윤자방이 황해 감사라,

집의가 해주(海州)로 아버지를 뵈러 가다가 돌연 병으로 인하여 죽었다.

중추의 관이 발인한 지 며칠이 못되어 집의의 관이 들어와

사림(士林)의 똑똑한 사람들이 한번에 죽으니,

인근 지척의 사이에 흉사(凶事)가 연달아 일어나

사림에서 비통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嘉善大夫贈大司憲 行富平都護府使安東金公諱誠童 配貞夫人晉州姜氏 之墓

가선대부증대사헌 행부평도호부사안동김공휘성동 배정부인진주강씨 지묘

부평도호부사 김성동(金誠童)  묘역후경

 

 

 

 

 

부호군공 증 좌승지 김려(金濾)

贈嘉善大夫兵曹參判 行副護軍金濾之墓 貞夫人丹陽禹氏祔左

증가선대부병조참판 행부호군김려지묘 정부인단양우씨부좌

贈嘉善大夫兵曹參判 行副護軍安東金公諱濾之墓 配貞夫人丹陽禹氏祔左

증가선대부병조참판 행부호군안동김공휘려지묘 배정부인단양우씨부좌

 

 

 

 

 

충좌위부호군 김언필(金彦泌)

禦侮將軍行忠佐衛副護軍 安東金公諱彦泌之墓

어모장군행충좌위부호군 안동김공휘언필지묘

//안동김씨 익원공파 부평도호부사 증 대사헌 김성동(金誠童) 가계//

조부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1400~1470)

부친 문정공 쌍곡 김질(文靖公 雙谷 金礩, 1422~1478)

        부평도호부사 증 대사헌 김성동(金誠童,1452~1495)

        배위 정부인 진주강씨( ~1495), 좌찬성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의 따님

                장남 어모장군 증 이조참판 김도(金淘,1482~1524)

                배위 증 정부인 영천이씨, 참봉 이말생(李末生)의 따님

                        손자 어모장군 증 병조참판 김언기(金彦淇)

                        손자 증 좌승지 김언린(金彦潾)

                차남 부호군공 증 좌승지 김려(金濾,1485~1550)

                배위 정부인 단양우씨(1487~1552), 사예 우집(禹楫)의 따님, 5

                        손자 충좌위부호군 김언필(金彦泌)

                                증손자 김경(金暻)

                        손자 군자감정 김언부(金彦溥,1512~ ?)

                        손자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沉,1514~1584)

                                증손자 병절교위 수암 김림(水巖 金琳)

                                증손자 포천현감 증 영의정 김근(金瑾)

                                증손자 이조판서 증 영의정 효헌공 눌암 김찬(孝獻公 訥菴 金瓚)

                       손자 김언함(金彦涵)

                       손자 부호군 김언상(金彦湘,1542~1602)

               삼남 장예원판결사 증 이조참판 김언(金漹,1495~1553)

               배위 정부인 경주이씨, 현령 이기(李琦)의 따님

               배위 정부인 연안이씨, 생원 이이수(李壽)의 따님

                       손자 시흥도 찰방 김득령(金得齡,1527~1568))

                       손자 관찰사 김억령(金億齡,1529~1598)

                       손자 증 좌승지 김백령(金百齡,1545~? )

                       손자 김구령(金九齡)

               장녀 직장 이여회(李如晦),

               차녀 연안인 사포 김석린(金石璘),

               삼녀 문화인 현감 류수천(柳壽千),

               사녀 경주인 한산군수 최수준(崔秀俊),

               오녀 청주인 사복시정 한계상(韓繼常), 정유재란 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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