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강우창 정려각(姜遇昌 旌閭閣), 효자 강우창(姜遇昌)
경북 김천시 어모면 옥율리 293
진주강씨 효자 강우창 정려각(姜遇昌 旌閭閣)
효자 강우창(姜遇昌)은 조선 시대 광해군 때의 인물로서 본관은 진주이다.
은열공 강민첨(殷烈公 姜民瞻)의 17세손으로 사평공 강원함(姜元咸)의 12세손이다.
선고 절충장군 강선태(姜善泰)와 숙부인 경주김씨 사이에 독자로 출생하였다.
평소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조석으로 틈만 있으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늘 가까이에서 맴돌며 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러던 중 부친이 병들자 직접 환자의 대변을 맛봐 병환의 위중을 헤아렸다.
병세가 위독할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면서
3년간 한결같은 정성으로 간병하자 인근에 그의 효성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자자했다.
그가 죽고 200년이 지난 1862년(철종13)
유림의 상소로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마을 앞에 효자비를 세우고 비각(碑閣)을 세웠다.
강우창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 강우창 정려비가 있다.
정려비 전면에 ‘효자학생강우창지려(孝子學生姜遇昌之閭)’란 비명이 새겨져 있으며,
‘숭정기원후사신유구월일성상명정(崇禎紀元後四辛酉九月日聖上命旌)’
[1861년]의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폭 49.5㎝, 높이 160.5㎝, 두께 20.5㎝이다.
비각의 크기는 220×180㎝이다. 비각 담은 벽돌로 구성되어 있다.
孝子學生姜遇昌之閭
효자학생강우창지려
孝哉若人待病嘗糞臨死血指年八耋遂日省掃淚積醎
효재약인대병상분임사혈지년팔질수일성소루적함
土膝痕穿階惟恐歲久泯滅矣幸蒙天允新其棹楔且謨
토슬흔천계유공세구민멸의행몽천윤신기도설차모
立石銘之曰
입석명지왈
효성스런 이사람이니 부친의 병이 위급할 때 변을 맛보며 증험하고
죽음에 임하여는 단지로 피를 드려 명을 연장시키고 만방의 시봉에 정성을 다하여
80을 넘기시고 시묘살이 눈물로 흙을 파매 무릅의 자욱이 파이니
세월지나 없어질까 염려되는데 하늘의 도움으로 행적을 새롭게
비에 새김에 이르러, 명하기를
卓乎天質事存
탁호천질사존 ... 아름답도다 하늘이 내린 효심이여
事亡始終如一
사망시종여일 ...살아계시나 돌아가시나 한결 같으매
曾孫克肖闡揚先美門閭
증손극초천양선미문려 ...증손 극초 미문지어 정려에 올리니
有爀于千百祀
유혁우천백사 ...백년천년 사당을 밝히시길
崇禎紀元後四辛酉九月 日 聖上命旌
숭정기원후사신유구월 일 성상명정(1861년 철종12년)
延日人 鄭遠羽 撰 연일인 정원우 찬
//진주강씨 은열공파 사평공계 효자 강우창(姜遇昌) 가계//
17대조 은열공 강민첨(殷烈公 姜民瞻)
12대조 사평공 강원함(姜元咸)
5대조 강민(姜敏)
고조부 강석인(姜錫寅)
증조부 가선대부 군자감정 강언구(姜彦耉)
조부 강의국(姜義國)
부친 절충장군 강선태(姜善泰),무과, 1592년 임란시 김천시 어모면 옥율리 진주강문 입향조
모친 숙부인 경주김씨, 김응식(金應植)의 따님
효자 강우창(姜遇昌), 1650년 후반생
통덕랑 강윤곤(姜允坤)
경산현령 강흥석(姜興碩)
증손 강재서(姜載瑞)
증손 강재동(姜載錬)
증손 강재흥(姜載興)
경북 김천시 어모면 옥률리 임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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