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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하동 두방재(河東 斗芳齋),은열공 강민첨 영당(殷烈公 姜民瞻),택류문(澤流門),두방영당(斗芳影堂),진주강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4. 9. 2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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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하동 두방재(河東 斗芳齋)

경남 하동군 옥종면 두양길 158-129 (두양리 1001)

      진주강씨 두방성지

斗芳影堂綜合開發事業表績碑              

두방영당 종합개발사업 표적비             

하동 두방재 택류문(澤流門)

하동 두방재(河東 斗芳齋)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있는,

고려 때 장군인 은열공 강민첨(殷烈公 姜民瞻, 963~1021)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장군은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현종 3(1012) 여진족이 쳐들어오자 영일, 청하 등지에서 이들을 격퇴하였다.

또한 1018년 현종 9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948~1031)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귀주대첩(龜州大捷)으로 적군을 대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로로 1019년 현종 10년에 응양상장군주국(鷹揚上將軍柱國)이 되고

이후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추대되고,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고

문종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공신각에 들어가게 되었다.

1021년 현종12년에 은열공 강민첨(殷烈公 姜民瞻)이 사망하자

평소 독서를 하던 우방산에 영당을 창건해 강민첨의 상을 봉안하고 위전(位田)을 두었다.

1352년 공민왕 1년에 9세손인 충정공(忠貞公) 사공(司空)이 예를 좋아하여

우방사(牛芳祠)를 중수하고 이어 세사(歲祀)를 지냈다.

조선 태종 때 두방산(斗芳山)과 우방산(牛芳山)을 사패지(賜牌地)로 내려 주었으며,

1777(정조1) 4월 우방사(牛芳祠)에 있던 영정을 두방산으로 옮겨 두방영당을 건립하였다.

이때 재사(齋舍)를 두방재(斗芳齋)라 하였으며 문은 택류문(澤流門)이라 하였다.

1868(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9(고종26) 두방영당을 두방산의 옛터에 다시 세웠다.

1927 8월 다시 중수하였는데, 설악 강수환(雪嶽 姜璲桓)이 영당 상량문을 지었다.

경내에는 1910년 후세들이 세운 신도비가 있다.

두방재(斗芳齋)

두방영당(斗芳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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