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임란북천전적지(壬亂北川戰跡地)
경북 상주시 경상대로 3123 (만산동 699)
경상북도 기념물 제77호



"임란북천 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북천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던 장소란 뜻으로,
북천이란 상주 시내를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며 이곳 자산이란 마을에서 격전을 벌였던 장소라 한다.
1592년 임진년 4월13일, 아침에 대마도를 출발한 왜군 선봉은 부산 앞 바다로 침공하여,
4월14일 부산진성, 15일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은 19일엔 언양성을 넘어뜨리고,
4월 22일 영천성을 거쳐 별다른 저항도 없이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였고,
그사이 조선은 4월 18일에 유성룡을 도체찰사, 신립을 도순변사,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해
백두대간의 조령, 죽령, 추풍령에 방어선을 편성하여,
왜군을 막기 위해 남진한 조선군은 23일 상주에 도착했으나 이때 병력은 고작 60여 명 정도였으며,
상주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이 밤새워 소집한 잔병과 장정은 800여명 이었다고 한다.
이에 비하여 왜군은 무려 17,000명
이때 이미 의병을 일으켜 상주에 있던 김준신 의병장 등은 상주성 사수를 주장하였으나,
순변사 이일(李鎰,1538∼1601)은 성을 버리고 북천에서 적을 막기로 한다.
1592년 4월25일 조선군은 북천에 진을 치고
고니시가 이끄는 왜병 정예군 17,000여 명에 대항하는데,
순변사 이일(李鎰)이 인솔한 관군과 상주지역에서 창의(倡義)한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
종사관 윤섬(尹暹), 이경류(李慶流), 박호(朴箎)등과
판관 권길(權吉), 사근도찰방 김종무(金宗武), 호장 박걸(朴傑),
의병장 김준신(金俊臣), 김일(金鎰) 등을 비롯한 800여 장병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북천은 이들의 피로 붉게 변하였다.
나중에 이곳을 철환산(鐵丸山)이라 했으며,
이들이 빠져 죽은 연못을 학사담(學士潭)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임란북천전적지 입구 외삼문의 상주 임란북천전적지(尙州 壬亂北川戰跡地)현판은
서예가 동강 조수호(東江 趙守鎬,1924-2016)의 1999년 글씨라고 한다.


상주 상산관(常山館)

상주 상산관(常山館)
상산관(商山館)은 조선시대 상주목(尙州牧)의 객사(客舍)로서
궁중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賀禮)를 행하듯
이 곳 전청(殿廳)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대궐을 향하여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 절하던 의식을 행하덕 곳으로
배례의식(拜禮儀式)은 목사가 부임할 때와 나라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에 정기적으로 행하여져 왔던 건물로
이 건물은 고려시대인 1328년(충숙왕 15)
당시 상주목사인 정간공 균헌 김영후(貞簡公 筠軒 金永煦,1292~1361)가
중수했다는 "상산지"의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앞서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객사이며,
1526년(중종 21) 소실된 것을 목사 윤탕(尹宕)이 중건하였으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 재건하고 1666년(현종 7)에 다시 중건하였다.
근대에는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여자중학교에 옮겨와서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1년 현 위치로 이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객관기(客館記)의 편액으로,
1343년 고려 충혜왕4년에 상주목사로 부임한
고려 말기의 문인 문정공 근재 안축(文貞公 謹齋 安軸,1282∼1348)이 지었다.



망궐례(望闕禮)
상산관(商山館)은 조선시대 상주목(尙州牧)의 객사(客舍)로서
궁중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賀禮)를 행하듯
이 곳 전청(殿廳)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대궐을 향하여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 절하던 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배례의식(拜禮儀式)은 목사가 부임할 때와 나라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에 정기적으로 행하여져 왔다.




침천정(枕泉亭)
침천정은 1577년(선조10) 상주목사인 충익공 백곡 정곤수(忠翼公 栢谷 鄭崑壽,1538~1602)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蓮堂)’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官亭)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상주목사인 도곡 한술(陶谷 韓述1541~1616)이 중건하였고,
1614년(광해군 6) 목사 강복성(康福誠)이 ‘천향정(天香亭)’으로 개칭하였다.
1693년(숙종 19) 목사 이항(李恒)이 연못의 구조를 홍백연당(紅白蓮塘)으로 고치고
정자 이름을 다시 ‘이향정(二香亭)’으로 고쳤다.
1914년 도시정비계획으로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역민 10여 명이 매입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沈晥鎭)이 ‘침천정(枕泉亭)’이라 고쳤다.
내부에는 20여개의 많은 기문 및 원운 현판이 남아 있으니,
효산 강신학(曉山 姜信鶴), 강신원(姜信元), 의당 정동철(義堂 鄭東徹), 석우 김동수(石友 金東洙),
운정 김상하(芸亭 金相夏), 상웅 장지숙(商雄 張志淑), 우당 김희수(愚堂 金熙秀),
초정거사 김성규(草亭居士 金星圭), 심연택(沈鍊澤),
정동교(鄭東敎), 황지선(黃芝善), 박시유(朴時有), 청호 강석희(靑濠 姜奭熙),
민사 조남탁(潣士 趙南倬), 석효 박주헌(石孝 朴周憲), 영우 황덕현(嶺愚 黃德玄),
아천 박정택(我泉 朴正澤), 백웅 황지선(白雄 黃芝善), 심환진(沈睆鎭) 등이 현판 찬자들이다.


침천정 상량문(枕泉亭 上樑文)
大正六年丁巳之暮春 晉陽 鄭東徹 撰
1917년정사년늦은봄 진양인 정동철 지음

침천정 중수기(枕泉亭 重修記)
昌寧夏山后人後學 成宅重謹書
창녕하산후인후학 성택중근서
정간공 하산 성대영(貞簡公 夏山 成大永,1829~1910)의 후학 성택중(成宅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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