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천대 무우정(舞雩亭)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52 (삼덕리 1-13)


무우정(舞雩亭)


무우정(舞雩亭)
무우정은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1604~1646) 선생이
1636년 인조14년 병자호란을 예견하고
숭명(崇明)의 의리를 지켜 은거하여 자연에 귀의하러 지은 정자이다.
무우(舞雩)란, 춤을 추며 비를 빈다는 뜻이요.
정자도 기우제터 우담(雩潭) 위에 세워졌으나,
선생은 자연을 벗삼아 도(道)를 즐긴다는
풍호영귀(風乎詠歸)의 뜻을 취하여 그 이름을 삼았노라 밝히었다.
무정은 국난에 목숨바쳐 신하의 도리를 다하리라 맹세한
충신연주지사(봉산곡,鳳山曲/일명 천대별곡,天臺別曲)의 산실이요
청의 볼모가 된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의 주치의로 특채된 재학지사로서
망국의 한을 품은 왕자들과 7년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충신 우담선생이 천추에 고절(高節)을 세운 유서깊은 현장이다.
그러기에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1570~1652),
택당 이식(澤堂 李植,1584~1647),
계당 유주목(溪堂 柳疇睦,1813~1872)등이
기문을 지어 강산이 절사(節士)를 만나 그 무게가 더하였다 기리었거니와
후대에는 경천대 무정이 낙강시회(洛江詩會)의 중심이 되어
문향(文鄕) 상주를 전국에 알리는 종루(鐘樓)가 되기도 하였다.
무우정은 옛 것을 지켜 새것을 창출하려는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1748년에는 상주목사 율포 이협(栗浦 李埉,1696~1769/재임1746~1750)이 중건하였고
1948년과 2005년 복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먼 뒷날에도 상산낙수(商山洛水) 거느리고 늘 여기 지켜 섰을 것이다.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 선생 살던 집터
위치 : 경북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1-2
구조 : 본채(방2칸,부엌1칸) 아래채(방1칸,말마굿간,디딜방아)
이곳은 우담 채득기 선생이 살던 집터이다.
우담 채득기 선생은 1604년 선조37년
충주시 금남면 삼생리 만개에서 태어나 화산 선유동과 공검 무지산(공검지 서쪽산)에 살았다,
1628년 이곳에 와서 초가삼간과 무우정을 짓고 살다가 병자호란 후인
1637년 인조15년 2월5일 세왕자(소현세자,봉림대군,인평대군)가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갔다.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담 선생을 천거하였으므로
1638년 12월에 심양으로 떠나 1645년 5월까지 세왕자를 시봉한 후 돌아왔다.
그 뒤 봉림대군이 벼슬하기를 권하였으나 사양하고 1647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봉산곡(鳳山曲)
가노라 옥주봉아 있거라 경천대야
요양 만릿길이 멀어야 얼마 멀며
그곳에서의 일 년이 오래라고 하랴마는
상봉산 별천지를 처음에 들어올 때
노련의 분노 탓에 속세를 아주 끊고
발 없는 구리솥 하나 전나귀에 싣고서
추풍 부는 돌길로 와룡강 찾아와서
천주봉 석굴 아래 초가 몇 칸 지어 두고
고슬단 행화방에 정자 터를 손수 닦아
낮에야 일어나고 새 달이 돋아 올 때
지도리 없는 거적문과 울 없는 가시사립
적막한 산골에 손수 일군 마을이 더욱 좋다
생애는 내 분수라 담박한들 어찌하리
밝은 세상 한 귀퉁이에 버린 백성 되어서
솔과 국화 쓰다듬고 잔나비와 학을 벗하니
어와 이 강산이 경치도 좋고 좋다
높다란 금빛 절벽 허공에 솟아올라
구암을 앞에 두고 경호 위에 선 모양은
삼신산 제일봉이 여섯 자라 머리에 벌인 듯
붉은 놀, 흰 구름에 곳곳이 그늘이요
유리 같은 온갖 경치 빈 땅에 깔렸으니
용문(龍門)을 옆에 두고 펼쳐진 모래밭은
여덟 폭 돌병풍을 옥난간에 두른 듯
맑은 모래 흰 돌이 굽이굽이 경치로다
그중에 좋은 것이 무엇이 더 나은가
구암이 물을 굽혀 천백 척 솟아올라
구름 위로 우뚝 솟아 하늘을 괴었으니
어와, 경천대야, 네 이름이 과연 헛된 것 아니로다
<중략>
시비 영욕 다 버리고 갈매기와 늙자더니
무슨 재주 있다고 나라에서 아시고
쓸데없는 이 한 몸을 찾으시니 망극하구나
상주 십이월에 심양 가라 부르시니
어느 누구 일이라 잠시인들 머물겠는가
임금 은혜 감격하여 행장을 바삐 챙기니
삼 년 입은 옷가지로 이불과 요 겸하였네
남쪽의 더운 땅도 춥기가 이렇거든
한겨울 깊은 때에 우리 임 계신 데야
다시금 바라보고 우리 임 생각하니
이국(異國)의 겨울 달을 뉘 땅이라 바라보며
타국 풍상을 어이 그리 겪으신가
높은 언덕에 뻗은 칡이 삼 년이 되었구나
굴욕이 이러한데 꿇은 무릎 언제 펼까
조선에 사람 없어 오랑캐 신하 되었으니
삼백 년 예악 문물 어디로 갔단 말고
오늘날 포로들이 다 옛날 관주빈이라
태평 시절 막히고 찬란한 문물 사라지니
동해 물 어찌 퍼 올려 이 굴욕 씻을런가
오나라 궁궐에 섶을 쌓고 월나라 산에 쓸개 매다니
임금이 굴욕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고금의 도리인데
하물며 우리 집이 대대로 은혜 입었으니
아무리 힘들다고 대의를 잊겠는가
어리석은 계략으로 거센 물결 막으려니
재주 없는 약한 몸이 기운 집을 어찌할까
방 안에서 눈물 내면 아녀자의 태도로다
이 원수 못 갚으면 무슨 얼굴 다시 들까
악비의 손에 침을 뱉고 조적의 노에 맹세하니
내 몸의 생사야 깃털처럼 여기고
동서남북 만리 밖에 왕명 좇아 다니리라
있거라 가노라 가노라 있거라
무정한 갈매기들은 맹세 기약 웃지마는
성은이 망극하니 갚고 다시 돌아오리라.
채득기가 병자호란 이후 인조 16년(1638)에 창작한 가사이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14) 청나라가 친명 정책을 유지하던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인데,
전쟁에 패배한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군신의 관계를 선언하는 굴욕적 예식을 치러야 했고,
청나라는 소현 세자, 봉림 대군과 척화파 등을 볼모로 붙잡아 갔다.
이때 작가 우담(雩潭) 선생이 왕자를 호종(扈從)하라는 명을 받고
심양으로 떠날 때 읊은 작품으로 화자의 상황은 작가의 실제 삶과 관련이 깊다.
작품은 자신이 은거하던 경천대를 떠나면서
자신이 은거했던 경천대(자천대) 부근의 풍경을 예찬하는 부분과
왕명을 받은 신하로서 도리를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천대별곡’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담채선생 유촉비(雩潭蔡先生 遺躅碑)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1604~1645)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영이(詠而), 호는 우담(雩潭) · 학정(鶴汀). 충주 출생.
증조할아버지는 채순연(蔡舜年)이고, 할아버지는 채무기(蔡無己)이다.
아버지는 채유종(蔡有終)이고, 어머니는 목사 이귀수(李龜壽)의 따님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부인은 판관 신응연(辛應鍊)의 따님 영산신씨(靈山辛氏)이고,
아들은 채극철(蔡克哲), 채극례(蔡克禮), 채극해(蔡克諧)이다.
학문이 속성하여
경사백가(經史百家,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한 작가들이 지은 서책)에 통달하였으며,
특히 역학(易學)과 천문지리(天文地理), 의약복서(醫藥卜筮)등
음율(音律兵陣)과 병진(兵陣)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침술에 정통하여 명의로 이름을 떨쳤으며 내침의(內鍼醫)로 인조 등 왕족들을 시봉하였으며.
1636년 32세 되던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분감척의(憤感斥議)하여 화산(華山) 선유동(仙遊洞)에 들어가
종로(終老)의 계(計)를 삼고자 하였다.
다시 상산(商山 : 지금의 상주)의 무지산(無知山)에 들어 두문불출하고 독서에 전심하였다.

그 뒤 봉림대군(鳳林大君:뒤의 효종,1619~1659)을 비롯한
세자와 대군이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되어
인조가 그를 왕호(往護, 왕을 호종)로 불렀으나,
병을 핑계로 불응하여 3년 동안 보은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643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심양으로 가서 주치의로서 대군들을 잘 받들었다.
이 때 세자 왕호에 오르는 감격의 정회를 읊은 가사 「봉산곡(鳳山曲)」을 지었으며,
특히 효종의 총애를 받았다.
환국시 임금의 소명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낙동강상 옥주봉(玉柱峯) 아래에 복거하였다.
1798년(정조22) 집의에 추증되었으며, 상주상의사(尙義祠)에 제향되었다.
저술로는 의서인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 삼의일험방(三意一驗方)이 있으며,
행적을 엮은 우담선생문집경천대실기(雩潭先生文集擎天臺實記)가 전한다.
1830년(순조30) 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던 인천채씨 문중 서원인 웅연서원(熊淵書院)에 배향되었다.


//인천채씨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 가계//
5대조 소성군 만계 채신보(邵城君 灣溪 蔡申保,1419~1489)
고조부 양정공 나재 채수(襄靖公 懶齋 蔡壽,1449~1515)
증조부 채순연(蔡舜年)
조부 채무기(蔡無己)
아버지 봉상시직장 채유종(蔡有終)
어머니 고성이씨, 목사 이귀수(李龜壽)의 따님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1604~1645)1646
배위 영산신씨, 판관 신응연(辛應鍊)의 따님
장남 숭정처사 송오 채극철(松梧 蔡克哲)
차남 채극례(蔡克禮)
삼남 채극해(蔡克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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