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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서봉사지(瑞鳳寺址), 현오국사탑비(玄悟國師塔碑)

구름에 달

by 碧巖 2025. 9. 1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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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 산111

용인의 옛 절터 서봉사지

용인시 수지구 서봉사터에 있는

고려후기인 1185년 건립된 승려 현오국사((玄悟國師,1125~1178)의 탑비.

보물 제9호. 비신 높이 1.88m, 너비 0.97m.

점판암으로 화강암의 부석(趺石) 위에 섰으며 이수(螭首)는 없다.

제액(題額)은

贈諡玄悟國師碑銘

증시현오국사비명  의 8자로 자경(字徑) 8㎝의 전서(篆書)이며, 본문은 자경 3.3㎝의 해서(楷書)이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기의 스님으로

이름은 종린(宗璘), 자는 중지(重之), 속성(俗姓)은 왕씨(王氏)로 왕종린(王宗璘)이다.

인종이 일찍이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여풍(餘風)을 이을 사람이 없음을 두려워하였으나,

마침내 현오(玄悟)가 뒤를 이어 나이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수계(受戒)하고,

1147년(의종1) 이후 수좌(首座)가 되어

김제의 귀신사(歸信寺), 산청의 국태사(國泰寺), 영주 부석사(浮石寺) 등의 주지를 거쳤다.

1178년(명종 8) 나이 53세(法臘 39세)로서 시멸(示滅: 고승의 죽음, 입적)함에

왕이 심히 슬퍼하여

전중소감(殿中少監) 임충질(任忠質)과

상서호부원외랑(尙書戶部員外郞) 최광유(崔光裕)와

내시(內侍)인 함경전(含慶殿錄事)의 녹사(錄事)등을 보내어

국사에 봉하고 시호를 현오(玄悟)라 하였으며 동림산(東林山) 기슭에서 다비(茶毘)하게 하였다.

비의 설립 연대는 대정(大定) 25년, 즉 1185년(명종 15)이며,

문인 등이 서봉사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오국사탑비의 찬자(撰者)는

한산인으로 정당문학에 오른 문평공 이지명(文平公 李知命,1127~1191)이며,

서자(書者)는 예서와 초서의 대가인 문화인 문간공 유공권(文簡公 柳公權,1132~1196)이다.

탑비의 조형은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寶境寺 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 보물 제16호),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普光寺址 大普光禪師碑, 보물 제107호)에서와 같이,

윗변의 양각(兩角)을

귀접이(물건의 귀를 깎아 둥글게 하거나 접어 붙이는 일)한 규형(圭形)이고,

지대석(地臺石)도 4변을 접은 간략한 것으로서,

개석(蓋石)과 여러 조식(彫飾)을 생략한 고려 말 석비의 새 계류를 형성하는 좋은 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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