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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천진궁 만덕문(天眞宮 萬德門), 밀성대군 지단(密城大君之壇)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8. 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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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천진궁 만덕문(天眞宮 萬德門)

경산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천진궁(天眞宮)

경남 문화재 제117

천진궁은 1665(현종 6)에 건립되었다.

천진궁은 남쪽을 향해 중앙에 단군(檀君)의 영정과 위패를,

왼쪽 벽에 부여, 고구려, 가야의 시조(始祖) 왕과 고려 태조의 위패를,

오른쪽 벽에는 신라와 백제의 시조 왕과 발해 고왕(高王)과, 조선 태조의 위패를 각각 모시고 있다.

원래 이 건물은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位牌)를 모신 공진관(拱振館)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으나,

1722(경종:景宗 2)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보관하며, 객사(客舍)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영조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건립되었으며,

일제 시대에는 일본 헌병대가 이 건물을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1952년에 밀양 지역민이 주축이 된 단군봉안회가 생기며

단군과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 등의 위패를 모시고 대덕전(大德殿)이라 하였다.

1957년 대대적인 수리와 함께 천진궁(天眞宮)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문을 만덕문(萬德門)이라 하였다.

이후 매년 봄· 가을로 어천대제(御天大祭, 음력 315)와 개천대제(開天大祭, 음력 103)를 지내고 있다.

천진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八作)의 주심포(柱心包)의 건물로,

대리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 기둥을 세워 건물의 권위와 웅장함을 더 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건축적 가치에 앞서,

일제가 조선왕조의 전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역대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감옥으로

사용하였으나 해방 후 밀양 지역민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밀양 천진궁(天眞宮)에 모셔진 위패

부여 시조왕위 위패 합77분

가락 시조왕위 위패 합10분

발해 고왕위 위패 합14분

백제 시조왕위 위패 합30분

고구려 시조왕위 위패 합27분

신라 시조왕위 위패 합56분

고려 태조왕위 위패 합32분

조선 태조왕위 위패 합25분

 

 

 

 

 

밀성대군 지단(密城大君 之壇)

 

밀성대군 지단(密城大君 之壇)

영남루 마당 안쪽에 있는 밀성대군 지단

밀성(밀양)박씨는 신라시조왕 혁거세의 29세손인 신라 경명왕의 8왕자 중

첫째인 박언침(朴彦忱)이 밀성의 성주인 밀성대군(密城大君)으로 봉작되었기에

그 자손의 본관을 밀성(密城)이라 하였다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중종39)~1610(광해군2)

경남 밀양시 내일동 318-2

본관은 풍천(豊川).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字는 이환(離幻),

號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峰).

아버지는 임수성(任守成)이며,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선생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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