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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심서엄(深棲广),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 풍엄 김기수(楓嚴 金琦琇), 춘고 김정수(春皐 金玎秀), 녹문처사 김도용(鹿門處士 金道容)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10. 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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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엄(深棲广)

경북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505

 

심서엄(深棲广)에 걸려 있는 편액은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가 쓴 것이다.

심서엄은 김영하(金永河, 1838~1916)가  과장(科場)의 풍조가 몹시 어지러움을 보고 낙향하여

서숙(書塾)을 창설하고 마을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천석(泉石)과 어조(魚鳥)를 벗하여 생애를 자적(自適)했던 곳이다.

심서(深棲) 선생은 3대에 걸쳐 동양의학을 전수받아 명의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으며,

3대손 녹문 김도용(鹿門 金道容)이 1925년 심서엄(深棲广)을 중수하였다.

녹문(鹿門)의 3대손 김태현(金泰炫)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서울 중앙대 국제대학원교수와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을 역임하였다.

 

김영하(金永河)가 원여(源汝), 號는 심서(深棲)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김덕태(金德泰)의 아들이고, 밀와(密窩) 권석원(權錫元)의 문인이다.

약관에 두어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세도정치가 극성에 달한 당시의 과장의 풍조가 몹시 어지러움을 보고,

“먼 지방의 세력 없는 사람은 도무지 바라볼 수도 없겠다.”고 탄식하고 낙향하였다.

 

애초의 건물 주인이 쓴 글에 보면, 검암(儉巖)이라는 바위 밑에 소나무 두 그루가 앞을 향해 있어서

그것을 기둥삼아 얽어 집을 지어서는 암옥(巖屋) 즉 바위집이라 부르며 심서엄(深棲广)이라고 편액(扁額)했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꾸짖으며,

“남들이 쓰는 실(室)·재(齋)·당(堂)·헌(軒)·정(亭)·와(窩) 등의 글자들을 버리고

하필 엄(广)자를 쓴 것은 무슨 뜻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

“이 글자가 내 평생의 일을 잘 형용하고 있지요.

젊어서부터 책을 뒤적였으나 게으르고 둔하여 학문을 이루지 못했고,

장년에는 농가에서 일하였으나 부유하지 못했고,  만년에는 기량이 둔하여 정밀하지 못했소.

이 엄(广)자는 처음은 있으나 잘 끝냄이 없는지라

뜻은 있었지만 성취함이 없는 나 자신과 가장 잘 부합되지요.”라고 대답했다.

깊이 숨어 사는 집  심서엄(深棲广) “ 깊이(深) 숨어 사는(棲)(广)

그가 거처하던 심서엄(深棲广)에는

본 주인의 「심서엄기」와 간은 권상한(艮隱 權相翰)의 「심서엄 명(銘) 병서(幷序)」,

선성 김동진(宣城 金東鎭)의 중건기(重建記)가 있어 이 정자의 유래와 주인의 풍모를 전해준다.

간은 권상한(艮隱 權相翰)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김원여(金源汝)가 영주 남쪽 시낼 계곡에 숨어 살며, 편액을 ‘심서엄(深棲广)’이라 했으니,

대개 엄(广)이란 바위 집을 이름이며, 그 글자의 생김이 마치 집을 짓다가 채 이루지 못한 모양과 같다.

그 뜻을 취함이 깊고 또 멀다 하겠다. 심서옹은 풍류 고사(高士)이다.

사람됨이 격앙강개하여 티끌을 초월하고 세속을 벗어나

항상 겸허하여 한 엄(广)자로 일생의 분수를 지키는 것을 제목으로 삼았으니,

이제 스스로 지은 엄의 기문을 보아도 알만하다.

 

장손 녹문 김도용(鹿門 金道容)은 이 엄(广)에서 기거하며

유당(幽堂) 앞에 몇 칸 집을 짓고 옛 편액을 걸어 추모하는 처소로 삼으니

이에 채 이루어지지 못했던 엄(广)이 훌륭한 집으로 되었다.

여기서 시를 읊고 손을 맞이하고 자손을 가르치면서 편안히 청복을 누려 90의 수(壽)를 누렸다.

근검과 덕행으로 기초를 삼으면 다른 날 문벌이 창성할 것을 점칠 수 있음이다.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 서

의친왕 의화군 춘암 이강(春菴 李堈)의 글씨로 현재 서울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通政大夫深棲金公永河之墓   淑夫人旌善全氏祔

통정대부심서김공영하지묘   숙부인정선전씨부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의 묘소

제절이 짧아 석물을 하단 입구쪽에 설치하였다.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의 묘소 후경

鹿門處士安東金公道容之墓

녹문처사안동김공도용지묘

 심서엄과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의 묘소 전경

경북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녹동마을 전경,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 안동김씨 증 통정대부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가계//

   22대조 충렬공 김방경(忠烈公 金方慶)

   18대조 익원공 김사형(翼元公 金士衡)

   16대조 동추공 김종숙(同樞公 金宗淑)

   14대조 영흥부사 김지동(金智童)

   13대조 판관 김건(金湕)

 

할아버지 김일상(金逸相, 1770~1829)

    아버지 김덕태(金德泰, 1809~1855)

                형님 김영순(金永淳, 1818~임오1882)

                형님 김영택(金永澤, 1820~정유1897)

                형님 김영호(金永浩, 1827~신묘1891)

                통정대부 행 종사랑 심서 김영하(深棲 金永河, 1838~1916)

                배위 숙부인 정선전씨, 전복재(全福載)의 따님

                        장남 풍엄 김기수(楓嚴 金琦琇, 1862~1940)

                                장손 녹문 김도용(鹿門 金道容, 1879~1960), 일명 김용회(金鎔會)

                                        증손 만구 김수창(滿懼 金洙昶, 1897~1958)

                                                  4대손 김려식(金麗植)

                                                             5대손 김상현(金祥炫)

                                                  4대손 김윤식(金潤植)

                                                             5대손 김태현(金泰炫)

                       차남 춘고 김정수(春皐 金玎秀)

                                손자 반산 김찬회(伴山 金贊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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