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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물계서당(勿溪書堂), 물계서원(勿溪書院), 우학정(友鶴亭)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9. 2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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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계서당(勿溪書堂)

경북 예천군 감천면 관현리 44-6

물계서당(勿溪書堂), 물계서원(勿溪書院)

1727년(영조3년) 음력 12월 11일에 삼남지역에 어사를 파견하여 증축한 서원을 조사하고

한 인물을 여러 개 첩설한 서원에 대해서 모두 훼철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1674~1756)을 비롯한

영남사림이 서원(書院)을 훼철하지 말 것을 주청하는 소를 올렸다.

그러나 안동인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선생을 주벽으로 모시던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의 물계서원(勿溪書院)은

1864년(고종1)의 1차 서원철폐령엔 포함되지 않았으나,

1868년(고종5)의 2차 서원철폐령에는 불행하게도  포함되어 

흔적도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지자  이를 애석하게 여기던 예천의 유림 권영달(權寧達)이

1917년 감천면 관현리에 건립한 우학정(友鶴亭)을

1962년에 누각식(樓閣式) 건물로 중건하여 물계서당(勿溪書堂)이라 편액(扁額)하고 명맥을 유지하여 왔으며,

 

1988년 순천인(順天人) 김철희(金喆熙)가 ‘물계서당기(勿溪書堂記)’를 지어 편액하였다.

물계서당이 있는 예천군 감천면 관현리는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당이 위치한 곳의 옛 이름은 ‘홍구동(紅九洞)’이다.

물계서원이 있었던 천향리는

천년기념물 제254호인 ‘석송령(石松靈)’이 있는 마을로 물계서당과 이웃하고 있으며

최근에 예천군에서 새롭게 정비하였다.

물계서원은 풍산인 학사 김응조(鶴沙 金應祖,1587~1667)선생이 75세이던 1661년(현종2)에

감천 물한촌(勿溪)에 서원을 세우고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선생의 혼백을 봉안하여 제사를 모셨다.

학사(鶴沙) 선생은 상락공의 충성과 의로움이야말로 세상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점과

물계가의 샘[泉] 주위 분위기도 세상의 잡념을 씻어내 뜻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사당을 세워 충렬사(忠烈祠)라 하고 봉안문(奉安文)을 지었다.

 

화산(花山)은 높고 푸르며 낙동강 물 맑게 흘러

지령(地靈) 길러 정기 모아 신선에서 하강하니

단우(壇宇)도 넓고 넓다.

 

세상에 드믄 재주 문무(文武) 겸비하니

때 마침 태어나사 몸 바쳐 보국(輔國)할제

곧은 기풍 충천(沖天)하고 엄숙강기(嚴肅綱紀) 떨쳤도다.

 

총마어사(驄馬御史) 나가실제 죽절(竹節)같이 곧은 충성

신명(神明)도 감동하고 만백(蠻貊)도 순종하다.

 

정의 세워 역적 토벌 괴수 잡아 목을 베니

인륜(人倫) 좋은 동국 땅에 어진 장상(將相) 위풍 밝혀

동해로 군려(軍旅) 떨쳐 파도가 조용하다.

 

생령(生靈)은 덕(德)을 입고 사직(社稷)은 혈기 찾아,

미관피발(微管被髮) 본 받으니 태산북두(泰山北斗) 높은 명성

우주를 덮은 공적 사후조두(死後俎豆) 마땅하다.

 

향방(鄕邦)이 추모하니 성사(盛事)에 운수(運數) 있어,

오백 년 지난 후에 부용산(芙蓉山) 기슭에

엄연한 정사(精舍)있어 맑은 사당 오가(五架)로다.

 

거북점[龜筮] 치고 좋은 날 선택하니 어진 선비 모여 든다.

공중에 도는 향연(香煙) 휘황하게 밝은 촛불

방불(彷佛)하신 그 영풍(英風) 천만세(千萬世) 두고 두고

나의 초려(蕉荔) 흠향(歆饗)하시고 후생들을 도우소서.

 

그 후 상락공(上洛公)을 주벽으로

현손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학사의 고조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揚震),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를 추배하여 4위를 모셨으며

훼철되기 이전 물계서원의 경내 건물은 사당, 동재, 서재, 전사청, 신문, 정문, 홍살문 등이 있었다.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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