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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개갑순교성지, 개갑장터, 최여겸(崔汝謙)마티아 순교지

구름에 달

by 碧巖 2022. 7. 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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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순교성지, 개갑장터, 최여겸(崔汝謙)마티아 순교지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158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

 

최여겸(崔汝謙,마티아)순교지는 고창지방 최초의 순교지이다.

최여겸(1763~1801)은 정조 15년(1791) 신유박해 때 고창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로 이곳은 그가 처형된 장소이다.

최여겸은 전라도 금산의 첫 순교자인

다산 정양용(茶山 丁若鏞)의 외사촌인 윤지충(尹持忠, 1759~1791) 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간 뒤 ‘내포의 사도’ 라 불리우던 이존창(李存昌, 1752~1801)루도비코를 만나면서

독실한 신자가 되며 영세를 받은 후 고향에서 열렬히 전교하여

그가 입교시킨 사람은 기록상에만 28명이 되며 전라도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

신해박해 당시 체포되어 무장현 개갑장터(최여겸이 태어난 곳)에서

자신이 포교했던 천주교인들과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9세를 일기로 참수되었다.

 

복자 최여겸(마티아) 참수 터

(1763 ~ 1801)

순교일 : 1801년 음력 7월 19일

시복일 : 2014년 양력 8월 16일

 

 

십자가의 길, Way of the Cross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영모당 김질(永慕堂 金質,1496~1555)의 효성으로 세워진 ‘개가(凱歌)장터(개갑장터)’∎

‘개가장터(개갑장터)’가 김질의 효성으로 장이 열리며 장터가 생겼다는 구전이 전해진다.
‘개가장터’는 공음면 석교리에 세워진 오일장으로서 일제강점기에 의병 활동의 본거지이기에 폐쇄되었다고 한다.

김질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과 조부모의 상 등 12년간을 시묘살이를 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꿩고기를 몹시 좋아했기에 그는 매년 12월 제삿날에는 짚신을 만들어  

그곳에서 8㎞나 되는 안자시장(현 해리시장:고창군 해리면 소재)에 가서 짚신을 팔아 꿩을 사서 제물로 쓰곤 하였다.

어느 해 눈이 많이 내려 시장이 서지 않아 제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는 크게 걱정하면서 그의 불효로 인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알고 제삿날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린 그날 석양 무렵에 갑자기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 들어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

김질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꿩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모셨다.

그 다음 해에도 짚신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쳐 제물을 구하기 위하여 안자시장에 가는 도중

때마침 무장 원님이 그곳을 행차하다가 김질의 모습을 보고 이 추운 날씨에 무엇 하러 가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원님은 김질의 효성이 지극함을 극찬하고는 그를 위하여 개가리에 장을 세워 주었고,

김질은 평생 동안 눈길에 시장을 보러 가는 고생을 덜게 되었다.

개가장터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스스로 제물이 된 꿩’과‘하늘을 감동시킨 효자’이다.

영모당 김질의 효행이 하늘을 감동시켜 이적을 보이는 것과,

사람을 감동시켜 일종의 포상을 받는 등 두 가지가 나타나 있다.

전자는 제사에 쓸 꿩고기를 구할 수 없자 꿩이 스스로 날아들었다는 내용이며,

후자는 무장원님이 개가리 장터를 세워 주었다는 내용이다.

조선조에 이르면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의 영향으로 죽은 조상에 대한 효도인 제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에 따라 3년의 시묘살이가 자식 된 이의 당연한 도리로 자리 잡았고, 물심양면으로 제사에 정성을 쏟았다.
개가장터의 유래는 이처럼 제사가 효의 주요한 부분이 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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