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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간공 충암 김정선생, 김철보, 김익련, 김성발, 육진태 정려기

구름에 달

by 碧巖 2015. 7. 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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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淨     본관은 경주(慶州). 보은 출신

<>원충(元冲), <>충암(冲菴), 고봉(孤峯),    <시호>문정(文貞) 나중에 문간(文簡)

1486(성종 17)1521(중종 16).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김호(金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처용(金處庸)이고,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효정(金孝貞)이며,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판관(判官) 허윤공(許尹恭)의 딸이다.

1507년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보임되고,

수찬(修撰병조좌랑을 거쳐 정언(正言)으로 옮겨졌다.

이어 병조정랑·부교리(副校理헌납(獻納교리·이조정랑 등을 거쳐 1514년에 순창군수가 되었다.

이 때 왕의 구언(求言: 정치에 도움이 되는 말이나 글)에 응해 담양부사 박상(朴祥)과 함께

중종 때 억울하게 폐출된 왕후 신씨(愼氏)의 복위를 주장하고,

아울러 신씨 폐위의 주모자인 박원종(朴元宗) 등을 추죄(追罪)할 것을 상소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보은에 유배되었다.

이 때 권민수(權敏手이행(李荇) 등은 이들을 엄중히 다스릴 것을 주장한 반면,

영의정 유순(柳洵) 등은 이에 반대했고, 조광조(趙光祖)도 치죄를 주장한 대간의 파직을 주청하였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대간 사이에도 대립이 생겼고, 둘 다 옳다는 설까지 제기되었다.

1516년 석방되어 박상과 함께 다시 홍문관에 들고, 권민수와 이행의 파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은 곧 중앙 정계에서의 사림파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응교(應敎전한(典翰)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뒤에 사예(司藝부제학·동부승지·좌승지·이조참판·도승지·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그의 정치적 성장은 괄목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당시 사림파의 급속한 성장과 긴밀한 관계를 지닌 것이었다.

 

 

 

 

      刑曹判書文簡公忠岩金先生神道碑 月沙 李廷龜 撰 水北 金光炫 全額

      형조판서문간공충암김선생신도비 월사 이정구 찬 수북 김광현 전액

 

 

 

 

 

 

 

 

          有明朝鮮資憲大夫刑曹判書 贈嶺議政諡文簡公沖庵金先生之墓  贈貞敬夫人恩津宋氏之墓

          유명조선자헌대부형조판서 증영의정시문간공충암김선생지묘  증정경부인은진송씨지묘


         

 

 

 

 

                                      문간공 충암선생묘역 후면에서

 

 

 문간공충암선생은 후사가 없어  兄 參奉 金光의 둘째아들 金哲葆로 후사를 삼았다.

忠岩先生 子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將仕郎康陵參奉金公哲葆之墓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행장사랑강릉참봉김공철보지묘

贈貞夫人延安金氏祔左

忠岩先生 孫子

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禁府事行丞訓郞幽谷道察訪金公益煉之墓 貞夫人固城南氏 祔

증자헌대부호조참판겸지의금부사행승훈랑유곡도찰방김공익련지묘 정부인고성남씨 부

 

 

 

 

 

忠岩先生 曾孫子   金聲發김성발 묘역

1569(선조 2)1649(인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시(景時). 기묘명현(己卯名賢) ()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철보(哲葆)이고, 아버지는 찰방 익련(益鍊)이며, 어머니는 남씨(南氏)이다.

1605(선조 3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고,

그뒤 주서(注書설서(說書전적(典籍병조좌랑·정언(正言지평(持平)을 거쳐,

1611년 해미현감(海美縣監)으로 나갔다.

이때 정온(鄭蘊)이 남의 말을 듣고 잘못 탄핵한 일이 있었으나,

원망하지 않았고 뒤에는 오히려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정온이 늘 사람들에게 오늘날에 드문 선비라고 극찬하였다.

인조반정 후에는 서산군수·장령(掌令필선(弼善), 상의원·장악원·제용감·사옹원의정,

판교(判校원주목사·종부시정(宗簿寺正금산군수 등을 지냈다.

관직에 있을 때는 백성들을 온화하게 대하고 형벌을 절제하여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죽은 뒤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贈通政大夫承政院都承旨行通訓大夫承文院判校金公聲發之墓  淑夫人文化柳氏祔左

   증통정대부승정원도승지행통훈대부승문원판교김공성발지묘  숙부인문화유씨부좌

 

 

 

 

 

 

通訓大夫行稷山縣監慶州金公昌運之墓  淑人密陽朴氏祔左

통훈대부행직산현감경주김공창운지묘  숙인밀양박씨부좌

 

 

 

 



 

                                         贈朝奉大夫童蒙敎官孝子沃川陸公鎭泰旌閭記

                                         증조봉대부동몽교관효자옥천육공진태정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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