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전-송담 송남수(松潭 宋柟壽), 안악군수 송세훈(松世勛),송희건,송희진,송희원, 취옹당 송희명(醉翁堂 宋希命)

구름에 달

by 碧巖 2015. 6. 28. 21:14

본문

728x90

 

 

은진송씨 송담공종중 관리사무소

 

 

 

 

 

200여년생의 소나무로 우거진 은진송씨 송담공종중의 천연보호림.  대전시 동구 이사동 산3번지 5.2ha.

 

 

 

송담공 종중의 하소산 유적비

 

절우당

 

 

 

절우당

 

송담 송남수 시비(松潭 宋壽 詩碑)

 

절우당 전경

 

 

 

송담(松潭) 송남수()1537(중종 32)1626(인조 4).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로(靈老), 호는 송담(松潭). 군자감정(軍資監正) 요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여림(汝霖)이고, 아버지는 안악군수 세훈(世勛)이며, 어머니는 진사 정난연(鄭鸞年)의 딸이다.

1578(선조 11) 음보(蔭補)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임명된 뒤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사헌부감찰·정산현감·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상의원판관·평시서영(平市署令호조정랑·통천군수·임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 재직시에는 치적으로 읍민이 송덕비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1601년 임천군수로 재직중 임진왜란 때

주장(主將)을 구하지 않은 수령으로 탄핵받아 치죄당하였으나 곧 사면되었다.

이 후 벼슬에 뜻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 한가로이 지내면서

선조인 유()의 제실 쌍청당(雙淸堂)을 중수하여 송(((()을 심어 소영(嘯咏)하고,

옛 선인의 언행을 초록하여검신요결(檢身要訣)을 저술하였다.

 

 

有明朝鮮國 嘉義大夫 行 龍驤衛副護軍 宋公壽之墓 令人晉州柳氏 祔左

유명조선국 가의대부 행 용양위부호군 송공남수지묘 영인진주유씨 부좌

 

 

 

 

 

 

 

송담공(松潭公)부친   안악군수 송세훈(世勛)묘역

 

 

 

         有明朝鮮國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 經筵參贊官通訓大夫 行安岳郡守宋公諱世勳之墓

         유명조선국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 경연참찬관통훈대부 행안악군수송공휘세훈지묘

         贈淑夫人延日鄭氏 合葬于東

         증숙부인연일정씨 합장우동

 

 

 

 

송담공(松潭公)의 조카 취옹당 송희명(醉翁堂 宋希命)묘역(贈兵曹參判 諱 樺壽의 子)

송희명(宋希命)15721656

()는 자순(子順), ()는 취옹당(醉翁堂),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증 병조참판 송남수(宋樺壽)의 아들, 회덕(懷德)출신이다.

1634(仁祖 12)  효우행(孝友行)으로 천거되어 헌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향리로 내려가 취옹정(醉翁亭)을 짓고 후손지도와 시문으로 여생을 보냈다.

1651(孝宗 2) 아들인 승지 송국택(宋國澤)의 청원으로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상례, 형제들에 대한 지극한 우애로 널리 알려졌다.

 

 

 

 

有明朝鮮嘉善大夫司知中樞府事  醉翁宋公希命子順之墓

유명조선 가선대부사지중추부사  취옹송공희명자순지묘

贈貞夫人晉州柳氏祔左

증정부인진주유씨부좌

 

송담공(松潭公)의 子 송희건(宋希建) 묘역

송희건(宋希建) 字 월송재(月松齋) 중훈대부(中訓大夫) 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

]    송계수(宋桂壽) 

생부] 송남수(  

 

 

 

송희원(宋希遠) 1565(명종 20)1623(인조 1).묘역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의백(毅伯). 여림(汝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악군수 세훈(世勛)이고,

아버지는 임천군수 송담공  송남수(宋柟壽)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유형필(柳亨弼)의 딸이다.

부친이 낙향하자 가까이에서 모셨으며 동거하는 여러 제매들과도 우애가 돈독하였다.

1604(선조 37)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이 되고, 나이 거의 40이 되어 벼슬길에 나가

군자감·제용감봉사를 거쳐 1616(광해군 8)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선비들이 사장(詞章)에 기우는 것을 보고

 이름을 떨치고 어버이를 드러내는 길은 과거에 합격하는 데에 있으나 사예(詞藝 : 시문을 지음.)만을

전공함은 구차한 것으로 강경(講經)하는 것만 못하다.”고 지적하고, 이후 경학에 몰두하였다.

1623년 개시문과(改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에 임명되었으나 이 해에 병사하였다. 뒤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송담공(松潭公)의 孫子, 송희원(宋希遠)의 子,  護軍公 송국중(宋國重)묘역, 배위 숙인곤양배씨

 

송국중(宋國重) 송운, 부호군을 지냈으므로 이후 후손이 파조로 하여 호군공파라 한다.

 

 

 

護軍公 송국중(宋國重)의 子 송규태 묘역

 

 

 

 

송담공(松潭公)의 子, 송희진 宋希進 묘역.  1580(선조 13)1641(인조 19).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퇴지(退之).

여림(汝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악군수 세훈(世勛)이고,

아버지는 임천군수 송담공 남수(柟壽)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유형필(柳亨弼)의 딸이다.

1603(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시대의 정국이 혼미했으므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반정 후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고

1628(인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에 보임되었다.

그 뒤 예조좌랑,사헌부의 지평(持平장령(掌令), 성균관의 직강(直講사예(司藝), 사간원의 정언(正言

헌납(獻納),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 등 문한직(文翰職)을 주로 역임하였으며, 청하현감을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기사관(記事官)으로서 선조실록편찬에 참여하였고,

간관으로 재직할 때에는 당시의 폐해를 바로 잡는 데에 앞장섰다.

1635년에는 대사헌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외척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간언으로 재직 때 왕의 뜻에 거슬려 청하현감으로 좌천된 뒤 낙향하였지만

병자호란으로 치욕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을에 망궐위(望闕位)를 설치하여 통곡하였고

그 뒤 향리에서 소학을 강론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송희진 宋希進 묘역

 

 

 

 

송담공(松潭公)의 孫子, 송국사(宋國士)묘역.   1612(광해군 4)1690(숙종 16).

 

 

송국사(宋國士),   1612(광해군 4)1690(숙종 16).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일경(一卿), 호는 계담(桂潭).

 

조부는 호조정랑(戶曹正郞)을 지낸 송담(松潭) 송남수(柟壽)이고,

 

부친은 예조좌랑(禮曹左郞)과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송희진(宋希進)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과 교유하였다.

 

45세가 되던 1651(효종 3) 6월 특별히 천거되어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직첩(職牒)에 청()의 연호가 쓰였다고 하여 사직서를 내고 벼슬을 받지 않았다.

 

그 뒤 1665(현종 6) 12월 다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이 역시 받지 않았다.

 

1666(현종 7) 우암과 동춘당의 권면으로 그해 4월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로 관직에 나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헌부감찰 겸 전중어사(司憲府監察兼殿中御使)로 전임되었다.

 

전중어사로 능력을 인정받아, 3년간 직을 수행했다.

 

1668년 이른바 칠문사건(漆門事件)으로 고창현감(高敞縣監)으로 나갔다.

 

현감으로 부임하여 1669(현종 10) 동헌(東軒) 옆에 별당인 평근당(平近堂)을 세웠는데,

 

그에 대한 내역과 선정에 대한 내용이 송시열이 지은 평근당기(平近堂記)에 기록되어 있다.

 

1671(현종 12)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다시 감찰에 제수되었으나 받지 않았다.

 

1675(숙종 1) 송시열이 귀양에 처해지고, 송준길 마저 관작이 추탈되자 분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으려 하였다.

 

1677(숙종 3)에는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廉)으로 하여금

 

송시열과 송준길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기도 하였다.

 

1690(숙종 16) 52479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공주 사한리(沙寒里: 현재 대전시 동구 이사동)에 묻혔다.

 

1737(영조 13) 통훈대부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춘추관기주관에 추증.

 

 

 

 

송담공(松潭公)의 증손자  계담공(桂潭公)의 子,  황해도도사 송규림(宋奎臨) 

 

송담공(松潭公)의 증손자, 계담공(桂潭公)의 子,   공주목사 송규현(宋奎炫)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行 公州牧使 宋溪宋公諱奎炫字明叔之墓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행 공주목사 송계송공휘규현자명숙지묘

配贈貞夫人高嶺申氏 祔左

배증정부인고령신씨 부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