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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이영남장군,이사종,이극인,가리포첨사 이영남.

구름에 달

by 碧巖 2016. 6. 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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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英男將軍 墓域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 산88-4번지

본관은 양성(陽城). 字 사수(士秀).

李英男이영남)[1563~1598]

配位 貞夫人 羅州丁氏 배위 정부인 나주정씨

충청북도 기념물 제144

 

이영남(李英男)[1563~1598]1563(명종 18) 지금의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22세인 1584(선조 17) 별시(別試) 무과에서 병과(丙科) 급제하였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의 연합 함대가 구성된 이후에

소비포권관(所非浦權管)으로 자리를 옮겨

1592년(선조 25년) 6월 이순신 휘하의 장수로 율포해전에서 공을 세웠으며,

15954월까지 3년간 근무하였다. 이후 태안군수를 지내고

1596년 장흥부사

1597년 조방장으로 충청병사 이시언의 휘하 장수를 지내고

1598년(선조31) 가리포첨사 겸 조방장으로  1118일 일본군과의 최후의 해전이었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하며 역전(力戰)하다가 탄환에 맞아 향년 36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1605(선조 38) 절충장군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으며,

1621(광해군 13)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9608월 진천군 유도회(儒道會)에서 충절을 기려 진천군 읍내리 삼수초등학교 정문 앞에 현충비를 세웠다.

또한 순국 당시 통제영이 있던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의 충무사(忠武祠)에 이순신 장군을 주벽으로 하여 배향되었다.

 

 

15981119(음력·양력 1216) 임진왜란(정유재란)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이 벌어졌다.

노량해전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도주하는 왜군을 끝까지 추격해 대승을 거뒀지만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는 이순신 외에도 10여 명의 장수가 왜군의 조총에 목숨을 잃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좌의정 이덕형은 다음과 같이 임금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통제사 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중국 군사와 합세해 진격하니

왜적이 대패해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이루헤아릴 수 없고 왜선 200여 척이 부서져 죽고 부상당한 자가 수천명입니다.

왜적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나무판자·무기 또는 의복 등이 바다를 뒤덮고 떠 있어

물이 흐르지 못했고 바닷물이 온통 붉었습니다.

통제사 이순신과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현감 고득장 등 10여 명이 탄환을 맞아 죽었습니다.

남은 적선 100여 척은 남해로 도망쳤고 소굴에 머물러 있던 왜적은 왜선이 대패하는 것을 보고 도망쳤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숨진 가리포첨사 이영남(李英男·1563~1598)은 바로 충북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 출신이다.

 

이영남은 적 함상에 뛰어 올라가 1검으로 3적을 베어 죽였고 적의 창을 빼앗아 1창으로 5적을 찔러 죽이고

 유탄에 맞아 쓰러지자 부하들이 침몰 직전 적 함상에서 이영남을 구했다.

 

26일 충북 진천군 덕산면 지전리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영남 장군의 묘소와 그의 애마 무덤이 있다.

 

'상산지(常山誌)'에는

 "충무공(이순신)이 일찍이 시를 주어 말하기를

 '북쪽으로 가서는 괴로움을 같이 하고 남쪽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 하자'고 했으니

두 공이 당일에 서로 뜻이 맞았음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이영남은 노량해전 이전부터 충무공을 보좌하며 10여 차례 해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명량해전 대승에도 힘을 보태 가리포첨사 겸 조방장으로 충무공과 운명을 함께했다.

 

당시 이영남 장군을 모신 하인 일학이

1599년 봄 선산인 덕산면 기전리에 장군을 묻었고 장군의 애마(愛馬)를 묻은 용마총(龍馬塚)도 그 옆에 있다.

 

'용마(龍馬)'는 매우 잘 달리는 훌륭한 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나라에서는 장군을 선무원종공신 일등 병조판서에 추증했고

전남 완도군 고금면 충무사(사적 114)에는 충무공과 함께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함께 모셨는가 하면

진천읍 삼수초등학교 앞에는 현충비를 세웠다.

 

이영남 장군 묘소(20088월 충북도 기념물 144호 지정) 위로는 부모와 조부 묘소가 있고

앞에는 20091111일 준공한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용사(忠龍祠)가 있다.

                         壬亂忠臣 陽城李英男將軍史蹟碑

                         임란공신 양성이영남장군사적비

 

 

 

 

 

 

五代祖  李之謙이지겸

高祖父  李秀寶이수보

曾祖父  李亨貞이형정

   祖父  僉知中樞府事 李克仁 첨지중추부사 이극인

      父  彰信校尉 副司直公 李嗣宗 창신교위 부사직공 이사종

      母  恭人 廣州陳氏 공인 광주진씨

      子  李震明

      孫  李仁近이인근, 李仁述이인술,李仁榮이인영,李仁亨이인형,李仁伯이인백,李仁行이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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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남장군 부친 부사직공 이사종과 모친 공인 광주진씨 묘역 

 

                 副司直陽城李公諱嗣宗之墓 配恭人廣州陳氏祔

                 부사직양성이공휘사종지묘 배공인광주진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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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남장군 조부 첨지중추부사공 이극인 묘역

 

 

                        僉知中樞府事陽城李公諱克仁之墓

                        첨지중추부사양성이공휘극인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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