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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영원군 고홍건(瀛原君 高弘建),증 공조참판 고세호(高世豪),영성군 고희(瀛城君 高曦),영해군 직곡 고두황(瀛海君 直谷 髙斗愰), 고응항, 고언겸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0. 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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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원종공신 영원군 고홍건(瀛原君 高弘建) 묘소

전남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산 132-2(135)

 

 

호성원종공신 영원군 고홍건(瀛原君 高弘建)

1580(선조 13)1655(효종 6).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는 입부(立夫). 영원군(瀛原君) . 아버지는 성주판관 고현(高晛)이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광해군 5)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인조 2)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호성원종공신에 올라

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瀛原君)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礪山營將)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가(扈駕)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때 장단부사로 있었는데 자원하여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효종 2)자헌대부 지중추부사를 역임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壽 76세로 졸하였다.

 

資憲大夫知中樞府事瀛原君兼 五衛都摠府都摠管高弘建之墓  貞夫人咸陽朴氏祔 貞夫人杞溪兪氏祔

자헌대부지중추부사영원군겸 오위도총부도총관고홍건지묘  정부인함양박씨부 정부인기계유씨부

 

 

 

 

 

 

증조부 도총부경력 증 공조참판 고세호(高世豪) 묘소

 

 

 

贈嘉善大夫工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行禦侮將軍五衛都摠府經歷 高公諱世豪之墓 貞夫人慶州金氏祔

증가선대부공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행어모장군오위도총부경력 고공휘세호지묘 정부인경주김씨부

 

 

 

 

 

 

 

 

양부 고희 묘소

贈資憲大夫戶曹判書僉知義禁府事行嘉善大夫瀛城君高曦之墓 貞夫人扶寧金氏

증자헌대부호조판서첨지의금부사행가선대부영성군고희지묘 정부인부령김씨부

 

 

 

호성공신 영성군 고희(瀛城君 高曦)

1560(명종 15)∼?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무과 급제

1592(선조 25) 임진왜란 때 수문장이었던 고희는 선전관이 되어 왕을 호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당시 곽산군수이던 이경준(李慶濬)이 왕을 호종하게 됨에 따라 특지로 이경준의 직을 맡게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호조판서 김수(金睟)의 천거를 받아

공세전운사(貢稅轉運使)에 임명되어 명나라 사신들의 영접에 진력하였다.

1601년 홍원현감을 거쳐 군기시판관과 유원첨사를 지낸 뒤 풍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604년 호종공신으로 18공신회맹록에 들었으며,

성공신 3등에 책록되어 영성군(瀛城君)에 봉하여졌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계자  영해군 직곡 고두황(瀛海君 直谷 髙斗愰) 묘소

고두황(髙斗愰) 조선 후기 문신   

1628(인조 6)1713(숙종 39). 조선 후기 무신. 는 회중(澮仲)이고, 는 직곡(直谷)이다.

증조부는 제원군(濟原君) 고사렴(髙士濂)이고,

생부는 고홍선(髙弘選)이며, 양부는 삼종숙 고홍건(髙弘建)이다.

옥구(沃溝)에서 살고 있던 고두황의 생부 고부선(髙傅選)은 삼종숙의 뒤를 잇기 위해

양자로 보낸 고두황이 21세 때에 광산김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매우 예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고부선은 의리로는 삼종숙 며느리이지만, 정리로는 내 며느리라고 하면서

노비와 땅을 광산김씨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내용이 제주고씨 집안에 내려오는분재기(分財記)에 실려 있다.

분재기에는 생부를 고부선이라고 하였는데, 고홍선의 자()가 부선인 것으로 생각된다.

 

 

고두황(髙斗愰)은 알성무과(謁聖武科)에 올라 관직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선대의 공훈으로 영해군(瀛海君)에 봉해졌다.

노년에는 고향 벗들과 봉산구로회(蓬山九老會)를 조직하였다.

아들로는 1653(효종 4) 생으로

1678(숙종 4) 무오(戊午)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05위로 무과에 합격한 고수일(髙守一)이 있다.

딸은 광산김씨 김주만(金胄萬)의 아들 김한(金澣)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는 조선 후기 문신 양득중(梁得中)의 시문집 덕촌집(德村集)》 〈청헌김공행장(聽軒金公行狀)에서 확인된다.

그의 딸과 김한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조카 김여웅(金汝雄)으로 뒤를 이었다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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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고수일 묘소

 

通政大夫高公守一之墓 配淑夫人原州邊氏祔

통정대부고공수일지묘 배숙부인원주변씨부

 

 

고응항 묘소

 

通德郞濟州高公應恒之墓 配恭人慶州李氏合兆 配恭人晉州柳氏合兆

통덕랑제주고공응항지묘 배공인경주이씨합조 배공인진주유씨합조

 

 

 

 

고언겸 묘소

 

松溪居士濟州高公彦謙之墓 配孺人韓山李氏合兆

송계거사제주고공언겸지묘 배유인한산이씨합조

 

 

묘역 전경( 벌초 전이라 잡풀이 어우려져 있다.)

 

//제주고씨 호성원종공신 영원군 고홍건(瀛原君 高弘建) 가계//

증조부 도총부경력 증 공조참판 고세호(高世豪)

   조부 함경남도우후 증 병조판서 제원군 고사렴(濟原君 高士廉)

   양부 호성공신 영성군 고희(瀛城君 高曦)

   양모 부령 김씨(扶寧金氏), 김의복(金義福)의 따님

   생부 성주판관 고현(高晛), 형님 영성군 고희(瀛城君 高曦)

   생모 한양조씨, 사의 조필(趙珌)의 따님

           호성원종공신 영원군 고홍건(瀛原君 高弘建)

           배위 정부인 밀양박씨,(묘비에는 함양박씨), 정부인 기계유씨

                   계자 영해군 직곡 고두황(瀛海君 直谷 髙斗愰), 생부 고홍선(髙弘選)

                           손자 통정대부 고수일(髙守一)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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