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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조문국 경덕왕릉(召文國 景德王陵),경덕왕릉(景德王陵), 조문국(召文國),의성 금성산 고분군(義城 金城山 古墳群)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2. 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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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국 경덕왕릉(召文國 景德王陵)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39

 

 

2017년 9월 3일 너무 맑은 가을의 하늘을 느끼며~~~~~~~~~~

 

조문국 경덕왕릉

역사서에 남아있는 조문국(召文國)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신라 벌휴왕 2(185)에 조문국을 벌()했다”,

고려사 지리지의성현은 본래 조문국인데 신라가 취했다.

경덕왕이 문소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의성부로 승격했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조문국의 옛 터는 현의 남쪽 25리에 있다. 지금은 조문리라 부른다등이 전부다.

또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과  미수 허목의 미수기언

조문국에 경덕왕이 있었고 조문금()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나,

촌로(村老)의 이야기 또는 현몽(現夢)했다는 식으로 대부분 짧거나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

 

 

1호 고분   경덕왕릉(景德王陵)

"누가 언제 나라를 세웠고, 또 어떤 이유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기록을 남긴 조문국 역사서는  없다.

자연히 조문국은 주류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지역 일부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명맥을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성과도 있었지만

주류사학계의 관심에서 벗어난 지역사라는 한계에 봉착하면서

의성민들에게만 회자되는

잊혀진 왕국으로한때는 기억 속에서 사라질 위기를 겪기도 했다.

    

 

무덤으로 이곳의 주인이라고 전하는 경덕왕(景德王)은 조문국 군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 숙종 때 미수 허목(眉叟 許穆)이 쓴 그의 문집(文集)을 통해

옛날부터 막연히 경덕왕릉이란 이름으로 살아오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경덕왕의 존재와 경덕왕릉의 진위여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왕릉의 둘레는 74m, 높이 8m로 능 앞에는 근래에 만든 1.6m 높이의 비석과 상석(床石),

멀뚱한 표정의 문인석(文人石) 1, 장명등(長明燈) 1쌍이 세워져 있다.

 

 

 

허목의 문집에는 경덕왕릉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실려있다.

옛날 이곳에 살던 농부가 외밭을 마련하고자 야트막한 언덕을 갈았다.

밭을 일구던 농부는 우연히 큼직한 구멍을 발견했는데,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여겨 일손을 멈추고 구멍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그 안에는 돌로 만든 석실(石室)이 있고, 그 둘레에는 금칠(金漆)이 되어 있었으며,

석실 안에는 금칠을 한 소상(塑像)이 있으니 그 머리에는 금관이 씌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금관을 본 농부는 '이게 웬떡이냐~!!' 욕심이 솟아나 그 금관을 벗기려고 했다.

허나 그의 손이 금관에 닿자 자석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의성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옛 조문국의 경덕왕이다.

나의 능이 황폐해져서 농부의 외밭이 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속히 능을 복원토록 하라'

그리고는 능의 위치를 알려주고 사라졌다.

날이 밝자 현령은 사람들을 이끌고 노인이 일러준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밭이 되기 직전인 고분이 있었다.

이에 현령은 왕릉을 조성했다고 하며, 지금 있는 고분이 바로 그때 조성한 경덕왕릉이란 것이다.

 

 

조문국 경덕왕릉

 

 

 

 

 

 

 

 

 

 

 

의성 금성산 고분군(義城 金城山 古墳群)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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