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면작기념비(文益漸 棉作紀念碑)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221-4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동부로 2545
문익점의 목화 재배를 기념하는 비.
忠宣公 富民侯 江城君 三憂堂 文益漸 先生
충선공 부민후 강성군 삼우당 문익점 선생
棉作記念
면작 기념
문익점 면작기념비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다가
고려로 귀국할 때 종자(從者) 김룡(金龍)을 시켜 목화 몇 송이를 딴 후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시험 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겨우 한 그루만을 살릴 수 있었으나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씨가 퍼지도록 하였다.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있을 때,
의성군의 지세가 중국의 금주성(錦州城)과 흡사하여
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서 재파하였다고 한다.
문익점의 자손이 의성 땅에 목화 재배를 시작한 경위와
목화를 처음 원나라에서 수입해 온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자
의성 목화 재배지에 탁암 김도화가 비문을 짓고
김희국이 글씨를 쓴 문익점 목면 유전비를 세웠다.
또한 1935년에는 현 위치인 금성면 대리리에
별도의 기념비인 문익점 면작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면작을 독려하는 시책에 따라 세운 것이라고 한다.
비석은 총 높이 342㎝, 비신(碑身) 199㎝, 폭 45㎝로 삼층의 기단 위에 촛대와 같은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충선공 부민후 강성군 삼우당 문익점 선생
(忠宣公 富民侯 江城君 三憂堂 文益漸 先生)’이라고 종서로 쓰여 있고,
기단에는 ‘면작 기념(棉作記念)’이라 횡서로 쓰여 있다.
비석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일제 강점기에 세운 비석으로 왜색이 짙어 개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평가도 있다.
조문국 무인상(召文國 武人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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