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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장도공 한치의(章悼公 韓致義) 청주한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2. 1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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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공 한치의 章悼公 韓致義

 세종 22(1440) 성종 4(1473).

군포시 산본동 산170. 네비 산본동 940

 

 

 

 

 

장도공 신도비

 

純誠佐理功臣資憲大夫兵曹判書淸陽君 贈諡章悼韓公神道碑

순성좌리공신자헌대부  병조판서청양군  증시장도한공신도비

 

 

장도공 한치의(韓致義)는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는 의지(誼之)이고 본관은 淸州이다.

좌의정 한확(韓確)의 아들이며 성종의 생모인 인수왕비(仁粹王妃; 후에 昭惠王后로 바꾸어 봉함)의 동생이다.

配位貞夫人 全義李氏郡事公 李桓全이환전의 딸로서

子는 21녀로  淸原君 韓偉한위平海公 韓倬한탁이다.

 

 

세조 1(1445) 음보(蔭補)로 사정(司正) 겸상서사록사(尙瑞司錄事)가 되었고 이듬해 생원시에 등과하였다.

세조 5(1459)에 통례원봉례랑(通禮院奉禮郞)을 거쳐 군기시(軍器寺) 부정(副正)을 역임하고,

1464년에는 안동대도호부사가 되었고

1467년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선전관관 훈련원도정을 맡았다.

예종 즉위 후에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성종 1(1470)에 동지중추부사, 한성부좌윤에 올라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71년 호조참판으로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녹훈되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다가

다음해에 청양군(淸陽君)에 바꾸어 봉하여졌다.

공조참판으로 관직을 옮긴 후

1472년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이듬해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졸 하였다諡號는 장도(章悼)이다.

 

 

 

 

 

純誠佐理功臣資憲大夫兵曹判書淸陽君 諡章悼韓公致義 配貞夫人全義李氏祔 之墓

순성좌리공신자헌대부  병조판서청양군  시장도한공치의  배정부인전의이씨부 지묘

    

 

 

 

 

 

 

 

 

 

 

 

 

 

 

 

 

 

//장도공 한치의 가계//

 

     부 한학韓確 양절공襄節公

         한치의韓致義 청양군 장도공淸陽君 章悼公

            자 한위韓偉 淸原君 , 한탁韓倬 평해공

                 손 한수도韓守道 忠佐衛副護軍

                     증손 한항韓亢 戶曹參議, 韓箕한기, 韓奎한규, 韓翼한익, 한두韓斗 兵曹參議

                        4대손 한충남韓忠男 가선대부 호조참판 청녕군 嘉善大夫 戶曹參判 淸寧君

                            5대손 한영韓瑩 忠佐衛副司果, 한락韓犖 龍驤衛副司果,

                               6대손 한덕우韓德優 訓鍊院都正 淸平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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