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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안양군 이항(安陽君 李㤚) 경기도기념물 제122호. 성종 3남, 만송晩松, 공회공恭懷公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2. 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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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군 이항 安陽君 李㤚

경기도기념물 제122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27

 

 

 

 

안양군 이항 安陽君 李㤚  성종 11(1480) 연산군 11(1504).

안양군(安陽君)은 성종의 3남으로 휘는 항이며, 는 성의(聖儀), 는 만송(晩松),  諡號는 공회(恭懷).

어머니는 성종의 후궁인 귀인(貴人) 초계정씨이다.

초계정씨는 봉안군(鳳安君) · 정혜옹주(靜惠翁主) 등  3남매를 두었는데 안양군은 이 중 장남이다.

배위는 면천군부인(沔川郡夫人) 능성구씨로  정국공신(靖國功臣) 판서 능천군 구수영(具壽永)의 딸로

1480(성종 11)에 태어나 1556(명종 11)에 별세하였다.

공의 성품은 온량 · 강직하였으며 성인(聖人)의 교훈을 본받아 실천하였다.

부왕인 성종대왕이 병환이 나면 크게 근심하여 의원에게 약재에 정성을 다하도록 분부하며

부왕 곁을 떠나지 않는 등 효행을 다하였다.

환후가 회복되면 평상시와 같이 경연에서 경서의 뜻을 연마하고 <사기>를 두루 읽었다.

 

 

공회사 전경

 

 

 

 

 

 

 

아버지인 성종대왕이  1494(성종 25) 춘추 38세로 승하한 후,

연산군 10(1504)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은 생모인 폐비윤씨 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초계정씨와 엄()씨의 참소에 있다고 판단하여

정귀인과 엄귀인을 사사하고,

같은 해 안양군은 제천으로 안치되고 집안의 재산은 적몰되었다.

그리고 노비 전토(田土) 사채(私債)는 추쇄되었고,

이후 봉안군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중종 1(1506)에 중종반정으로 중종이 즉위하면서 안양군의 생모인 정씨에게는 삼년제물이 내려지고 안양군과 봉안군이 복작(復爵)되어 안양군에게 `공회(恭懷)'라는 諡號를 내리며,,종이 정포(正布면 등이 내려짐과 동시에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중종 15(1520)에 안양군 부인의 상소에 능성구씨 선산인 경기도 양주군 진관면 군장리 묘좌에 예장하였으며이후 시흥군 남면 광정리, 지금의 군포시 산본동 수리산하 건좌에 면례하였고, 1990430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122호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안양군이 제주도 적소에서 향년 25세로 참화를 당하였을 때 서울에 있던 공주주씨가 유자인 당시 8세 된 종남도정(從南都正) 억수(億壽)와 함께 지금의 군포시 산본동 수리산하 광정동에 숨어 살아 이곳을 고향과 선영으로 정하게 되었다.490여 년이 지난 근래에는 안양군 묘소만 산본동 현지에 남아있고 나머지 전체 선영은 19932월 국가 개발정책에 의하여 부득이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으로 이장하였다.

 

 

成宗大王第三男 安陽君 贈諡恭懷公諱㤚之墓  沔川郡夫人綾城具氏 祔左

성종대왕제삼남 안양군 증시공회공휘항지묘  면천군부인능성구씨 부좌

 

 

 

 

 

 

 

 

 

 

 

 

 

 

                       神道碑天然座臺 龜岩移安紀行碑

                       신도비천연좌대 구암이안기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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