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남양주-이화 의안대군 양소공 李和 義安大君 襄昭公 이요정二樂亭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1. 22. 00:24

본문

728x90

 

 

의안대군 양소공 이화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산97-1

 

 

 

 

 

이화(李和, 1348~ 1408106)는 고려 말의 선비이며 조선 초의 왕족, 무신, 문신으로

는 이요정(二樂亭), 諡號는 양소(襄昭).

본관은 전주이며 환조 이자춘의 아들이자  태조 이성계의 이복 동생이다.

 

의안대군 이화(1348~1408)는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최대공신이다.

위화도 회군(1388)을 시작으로

회군공신 2, 개국 일등공신, 정사공신(1차 왕자의 난), 좌명공신(2차 왕자의 난) ,

공신반열에 올라 현재 종묘 공신당의  태조 묘정에 조준, 이지란 등과 함께 서열 두 번째에 배향되어 있다.

이화는 특히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성계의 이복형인 완풍대군 이원계가 충신은 불사이군이기 때문에

아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동참하지 못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자결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철저히 이성계의 오른편에 서서 명실 공히 조선 초기 최대의 실권자가 되었다.

결국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을 도와 또한 태종을 옹립하고 마침내 영의정 부사에 오른다.

 

 

이화의 둘째 아들 이숙도 조선 초기 공신반열에 올랐으나 이숙의 아들 이양이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화의 후손 16인이 한꺼번에 화를 입는다.

훗날 숙종은 이를 기리기 위해 양세원훈’, ‘일문과절이라는 어제어필을 하사한다.

이화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나가

22세에 대장군에 오르고

61세에 영의정 부사에 오르기까지 오직 나라의 수호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로

600여 년간 역사에 묻혀 있었다.

이화에 대한 기록으로 삼봉 정도전이 남긴

이요정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을 제외한 유일한 문헌으로 남아 있다.

 

朝鮮國純忠佐命開國定社佐命元勳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府事義安大君襄昭公諱和墓碑

조선국순충좌명개국정사좌명원훈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부사  의안대군양소공휘화묘비

 

 

 

 

 

 

 

 

 

 

 

 

 

 

 

 

 

 

 

 

                  領議政義安大君襄昭公 和之墓

                  영의정의안대군양소공 화지묘

 

 

 

 

 

///의안대군 이화 가계///

 

 아버지 환조 이자춘

 어머니 정빈 김씨

이복 형 태조 이성계

   친형 이원계(李元桂)

           子 4이양우(李良祐이천우(李天祐이조(李朝이백온(李伯溫)

義安大君 李和 襄昭公의안대군 이화 양소공

   貞夫人 :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三韓國大夫人 順興安氏) - 安奇의 딸

   繼夫人 : 삼한국대부인 교하노씨(三韓國大夫人 交河盧氏) - 盧訔노은의 딸

     1子. 順天君 李之崇이지숭 靖昭公--이수장李壽長

     2. 完川君 李淑이숙 齊懿公제의공--河寧君 李穰하녕군이양  河陵君李穫하릉군이확

     3. 鶴川君 李澄이징 良靖公양정공 --昌城君李義敬창성군이의경--靑陽君李希濬청양군 이희준

     4. 寧川君 李湛이담- 豊安君 李孝孫풍안군 이효손

     5. 全川君 李皎이교-

     6. 興川君 李淮이회--李福同이복동

     7. 益川君 李漸이점--韓山君 李義山한산군 이의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