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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원임 대제학 우의정 차호 민암(叉湖 閔黯)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3. 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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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임 대제학 우의정 차호 민암(叉湖 閔黯)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산42-5

 

 

원임 대제학 우의정 차호 민암(叉湖 閔黯)

인조 14(1636)숙종20(1694) 본관은 여흥(驪興). 

는 장유(長孺). 는 차호(叉湖).

민세주(閔世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영(閔韺)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민응협(閔應協)이며, 어머니는 김수현(金壽賢)의 딸이다.

배위 정경부인 경주김씨 판서 김시진(金始振)의 딸

배위 정경부인 해주정씨 현감 정세준(鄭世浚)의 딸 

형은 민희(閔熙) 좌의정, 민점(閔點)좌찬성이다.

 

 

右議政閔公黯 貞敬夫人慶州金氏 貞敬夫人海州鄭氏 之墓

우의정민공암 정경부인경주김씨 정경부인해주정씨 지묘

 

 

현종 6(1668)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지평,승지,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숙종5(1679)에 고산찰방(高山察訪)조지겸(趙持謙)

당시 함경도 관찰사인 이원록(李元祿)이 참람하게 역마(驛馬)를 탄다고 탄핵하였다.

함경도 관찰사 재임시 그곳 실정과 경험을 자세히 들어서

이원록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극구 변명하다가 도리어 탄핵한 조지겸을 문초받게 한 사실은 유명하다.

1678년에 동지사 겸 변무부사(당시 명나라에서 인조반정에 대한 기록이 아주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파견된 사신)로 복평군 (福平君) 연과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에 귀국하였다.

그뒤 이조참판을 거쳐 1680년 대사헌으로 있다가 경신대출척으로 남인(南人)이 실각하자 파직되었다.

파주군 교하면 금산리(錦山里)에 살면서 회포강(灰浦江)가에 정자를 짓고 소일하였다.

1682년 서인(西人) 김중하(金重夏)로부터 모반한다는 무고(誣告)를 받았으나 조사 뒤 무사하였다

 

 

1689년의 기사환국으로 다시 대사헌에 기용되어서는 이조판서인 심재(沈梓)와 함께

서인 김수항(金壽恒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여 그들의 처형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대제학·병조판서를 역임하였고,

1691년에는 우의정에 승진하였으며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94년에 김춘택(金春澤)등이 숙종의 폐비인 민씨(閔氏)를 복위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고변(告變)이 있자

남인의 영수이던 그는 훈련대장인 이의징(李義徵)과 함께 일대 옥사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숙종이 갑자기 남인을 쫓아내고 서인을 등용하는 갑술옥사를 일으켰다.

이로서 일찍이 인현왕후(仁顯王后) 출궁(出宮)의 교문(敎文)을 지었었다는 죄명으로

제주도 대정(大靜)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의 탄핵으로 이의징과 더불어 사사(賜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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