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삼도의군도총재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춘천시 남면 가정리 541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1915년 음 1월 29일 중국 봉천성(현재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寬甸縣 芳翠溝)에서 순국하여
평정산(平頂山)에 안장되었다가
1935년 음3월 14일 공향인 춘천시 남면 가정리 현 묘역으로 반잔(반장)되었다.
2000년 3월 묘역이 강원도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의암교와 묘역
의암교와 충의문
애국
관일약비
관일약은 1909년 류인석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국내외 항일의병세력을 결속하기 위하여 시도한 향약조직으로
愛國,愛道,愛身,愛人의 4가지 행동강령을 조형물로 제작하였다.
애도
애신
애인
의암연보 조각벽
유인석(柳麟錫)(1842.1.27.~1915.1.29) 십삼도의군도총재
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으로 본관은 고흥(高興), 字는 여성(汝聖), 號는 의암(毅菴)이다.
헌종 8년(1842)에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생부는 유중곤(柳重坤)이나 14세 때 족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이때부터 비교적 건실한 양가(養家)의 문벌을 배경으로 성장하였으며,
할아버지 유영오(柳榮五)의 인도로 위정척사사상의 원류인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1792년~1868년)의 문하에서
중암 김평묵(重菴 金平默 1819(순조 19)∼1891(고종 28))과
문간공 성재 유중교(文簡公 省齋 柳重敎 1832(순조 32)∼1893(고종 30)로부터
춘추대의정신(春秋大義精神)에 입각한 존화양이사상(尊華攘夷思想)을 터득하였다.
의암 유인석 선생은 한말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정통도맥(正統道脈)을 계승한
대유학자(大儒學者)인 동시에 현실적인 위정척사론자(衛正斥邪論者)로,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운동을 시작하여 중부지역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1908년 해외로 망명한 이후에도 항일투쟁을 계속하여
십삼도의군도총재(十三道義軍都總裁)로 추대되는 등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충효지와 관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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