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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광성군 김정 문인석(光城君 金鼎)-광산김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8.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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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군 김정(光城君 金鼎)

문인석-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5

강원도 춘천시 칠전동 619-2번지    모란봉

 

광산김공광성군묘역

 

신도비와 묘역전경

 

推誠輔理功臣重大匡大護軍 光城君諱鼎神道碑文

추성보리공신중대광대호군 광성군휘정신도비문

부군(府君)의 휘(諱)는 정(鼎)이요 성(姓)은 김(金)이니 세계(世系)는 광산(光山)이다.

신라말기(新羅末期)에 왕자(王子) 휘(諱) 흥광(興光)이 광주(光州)로 은거(隱居)하시어

자손(子孫)이 이로 인(因)해 광산(光山)으로 본관(本貫)을 삼았다.

고려조(高麗朝)에 들어서 자손(子孫)이 창성(昌盛)하여

팔대(八代)의 평장사(平章事)를 연출(演出)하시다.

 

 

 

() 양감(良鑑) 시호(諡號)는 문안공(文安公)이니 중국(中國) ()나라에 들어가시사 태묘(太廟)와 태학(太學)의 도본(圖本)을 가지고 환국(還國)하여 유교(儒敎)의 도리(道理)를 밝히시고 고법(古法)을 계승(繼承)하고 미래(未來)를 개명(開明)하사 세상(世上)에 종사(宗師)가 되시니 이 어른은 부군(府君)의 먼 현조(玄祖)이시다. 고조(高祖) ()는 연()이니 찬성사(贊成事)에 시호(諡號)는 양간공(良簡公)이요 증조(曾祖) ()는 사원(士元)이니 찬성사(贊成事) 시호(諡號)는 정경공(貞景公)이요 () ()는 진()이니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에 시호(諡號)는 장영공(章榮公)이요 () ()는 영리(英利)니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는 남양홍씨(南陽洪氏)니 선공부령(繕工副令) 승연(承演)의 따님이라 부군(府君)이 공민왕(恭愍王) 국사(國事) 다난(多難)할 즈음에 왕실(王室)을 보호(保護)하여 추성보리(推誠輔理)의 공()으로 인()하사 광성군(光城君)으로 봉작(封爵)을 받으시고 관력(官歷)은 전()하는 바 심()히 많다. 외직(外職)으로는 양광(楊廣) 전라(全羅) 양도(兩道) 찰방사(察訪使)내직(內職)은 대호군(大護軍)이니 벼슬은 일품(一品)의 위계(位階)배위(配位)는 숙신택주(肅愼宅主) 연안이씨(延安李氏)니 전법판서(典法判書) ()의 여()삼자(三子)가 등과(登科)하므로 봉작(封爵)하시니 당세(當世)에 영귀(榮貴)를 누리셨다.

거삼남(擧三男)하니 장자(長子)는 약채(若采)니 문과급제(文科及第)로 좌사의(左司議)를 하시고

()에 이태조(李太祖)를 섬겨 관()이 충청도(忠淸道) 도관찰(都觀察) 출척사(黜陟使)에 이르시고

차자(次子) 약항(若恒)의 호()는 척약재(惕若齋)니 문과급제(文科及第)하여 헌부(憲府)를 관장(管掌)할 시()

이태조(李太祖) 혁명(革命)이 부당(不當)함을 힘써 배척(排斥)했으나 부득(不得)하고

수이부득불이(雖而不得不已) 출사(出仕)하여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의 제직(諸職)을 역임(歷任)하셨다.

마침내 중국(中國)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으니

이태조(李太祖)가 광산군(光山君)을 추수(追授)하고 그 집을 후휼(後恤)하다.

그 후() 권양촌(權陽村)으로 인()하여 절의(絶義)를 포상(褒賞)함을 청()

정포은선생(鄭圃隱先生)으로 더불어 동일(同日)에 증직(贈職)하여 의정부(議政府) 찬성사(贊成事)하고

청백리(淸白吏)에 선록(選錄)하니 이는 공()의 차자(次子)

계왈(季曰) 약시(若時)니 호()는 음촌(陰村)이요 문과급제(文科及第)하여

진현관(進賢館) 직제학(直提學)을 하시더니 혁명(革命)()에 끝내 절의(絶義)를 지켜 망복(罔僕)하셨고

이태조(李太祖)가 포의(布衣)의 교분(交分)으로 시호(諡號)를 충정(忠定)이라 하다.

 

 

손자(孫子)와 증손이하(曾孫以下)에 지금이십여대(至今二十餘代)

육칠백년간(六七百年間)에 더욱 번창(繁昌)하니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양대분(兩代分)인즉

성무(聖廡) 즉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시는 전례(典禮)를 받으사

울연(蔚然)히 국중(國中)에 명문(名門) 거족(巨族)이 되니

이는 선대(先代)로부터 내리심과 부군(府君)의 적덕여음(積德餘蔭)이 아니리요

연이(然而) 부군(府君)의 풍성(豊盛)한 공적(功績)과 위엄(偉嚴)과 지극(至極)하신 말씀 및 고행(高行)

기타(其他)의 유사(遺事)는 세상(世上)이 변혁(變革)되여서 거룩하신 사료(史料)는 끊어지고

널리 고증(考証)할 수 없음을 심()히 한탄(恨嘆)할 일이라

묘소(墓所)는 일찍 중간(中間)에 실전(失傳)하더니 후손(後孫) 화택(和澤)이 춘천(春川) 재임시(在任時)

드디어 묘소(墓所)를 찾아 춘천부(春川府) 남내면(南內面) 정족리(井足里) 모란봉하(牧丹峰下) 좌경원(坐庚原)

봉심(奉審)하여 지금(至今)에 수호(守護)하여 향화(香火)를 끊지 않으시고

()는 세구연심(歲久年深)하여 마멸(磨滅) 손상(損傷)이 되어 보는 자() 통탄(痛嘆)할 일일세

작추(昨秋)에 제종(諸宗)이 합의(合議)하여 개수(改修)함에

불초(不肖) 화택(和澤)으로 부군(府君) 묘하(墓下) 모술재(慕述齋) 별청유사(別廳有司)를 맡기고

시종주선(始終周旋)하게 함에 함께 다 명()을 할 것을 부치심에 감()히 사양(辭讓)치 못하고

근이(謹以) 관수(盥手)하고 헌문왈(獻文曰)

유아김씨(維我金氏)는 세상(世上)에 잠영(簪纓)히 빛나사

부군(府君)의 유덕(遺德)에 다시 가문(家門)이 진작(振作)하였다.

그 연원(淵源)이 풍부(豊富)하고 그 물 흐름이 장원(長遠)함에

그 소명(召命)한 이치(理致)가 심()히 밝으니 비()를 새겨서 묘의(墓儀)를 갖추어 표()하나이다.

 

 

 

 

 

광성군 김정(光城君 金鼎)

본관 광산   고려 충숙왕 16년인 (1329)  송도(開城) 서부 향천리출생

배위는 숙신택주(肅愼宅主) 연안이씨로 전법판서 이방(李昉)의 딸이다.

김정(金鼎)1367(공민왕16) 충청, 전라도(楊廣,全羅兩道) 찰방사를 역임하고

내직(內職)으로 대호군(正三品)과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냈고,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 책봉 후  광성군(光城君)을 봉작(封爵)받았다.

 

광성군의 묘소현재 남한에 존재하고 있는광산김씨의 묘소로는 가장 오래된 묘소이며

   광성군의 묘를 언제  실전하였는지 모르나 1760년대 말에 가서야

   후손 김화택(金和澤)이  춘천부사 재임시  묘소를 다시 찾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高麗推誠輔理功臣重大匡大護軍 光城君光山金公諱鼎之墓 肅愼宅主延安李氏 祔

   고려추성보리공신중대광대호군 광성군광산김공휘정지묘 배숙신택주연안이씨 부

 

 

 

 

 

광성군 김정묘역문인석(光城君 金鼎墓域 文人石)-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5

강원도 춘천시 칠전동 모란봉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신인 김정 선생의 묘역에 있는 1쌍의 문인석이다.

199895일 강원도의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김정은 고려 공민왕 때 양광도 찰방사와 전라도 찰방사, 대호군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로서

공민왕 20(1371)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되었고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광주목지에 중대광 광성군에 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문인석 2기는 동일한 수법으로 조각하였는데, 다른 문인석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낮은 관모를 쓰고, ··입은 얇은 선으로 표현하였으며

두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5-김정묘역문인석(金鼎墓域文人石)

 

 

 

 

 

 

 

 

 

 

 

 

고조부 찬성사 양간공 김연(良簡公 金璉)  

증조부 찬성사 정경공 김사원(貞景公 金士元

   조부 김진(金稹)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 장영공(章榮公)

   부친 판군기감사 김영리(金英利

    모친 남양홍씨,  선공부령(繕工副令) 홍승연(洪承演) 따님

          대호군 삼중대광 추성보리공신 광성군 김정(光城君 金鼎) 

          배위 숙신택주(肅愼宅主) 연안이씨,  전법판서 이방(李昉)의 따님

                                     거삼남(擧三男)

             장남  좌사의 충청도 출척사 김약채(金若采

                     손자  검열 김문(金問)

                              증손 광성부원군 김철산(金鐵山)

                                     현손 좌의정 김국광(金國光)

                                             좌참찬 김겸광(金謙光)

             차남 대사성 광산군 척약재 김약항(光山君 惕若齋 金若恒)

             삼남 직제학 충정공 음촌 김약시(忠定公 陰村 金若時)

                             (음촌은 태조 이성계와 동갑으로 교분이 매우 두터웠으며,

                              대과 소과를 태종과 나란히 합격하였으나,

                              조선의 개국에 타협하지 못한 두문동 72현으로

                                                     경기도 광주의 부전어동不傳語洞 행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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